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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오 Oct 28. 2022

스테로이드의 ‘만 번 발차기’에 쓰러진 이소룡

    홍콩영화 ‘사망유희’(死亡遊戱)는 법주사 팔상전 5층 목조탑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1층은 발차기(태권도) 고수가, 2층은 손기술(영춘권) 고수가, 3층은 무기술(쌍절곤) 고수가, 4층은 관절기(유술) 고수가, 5층은 키가 2.2m가 넘는 거인이 지키고 있다. 대본에서 이소룡은 한 층씩 오르면서 고수들을 격파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망유희’는 제목 그대로 ‘죽음의 경기’(Game of Death)였을까? 제작하는 도중에 주인공이 죽어버렸다. 주인공이 죽은 걸로 위장한다는 줄거리가 불길했을까, 1층, 2층을 미루고 그 위층부터 먼저 촬영했기 때문일까? 느닷없는 주인공의 죽음은 영화는 ‘유희사망’(Death of Game)이 되어 버렸다. 영화는 쫄딱 망했지만, 죽은 주인공은 처음 선보인 ‘노란 운동복’으로 되살아났다. 


    이소룡은 몸이 약해 잔병을 달고 살다가 7살에 태극권(太極拳)을 처음 배웠다. 불량학생으로 매일같이 골목에서 싸움질이나 하던 그는 체조 같은 무술에 금방 싫증을 냈다. 골목에서 살아남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4년 정도 배운 무술이 영춘권(詠春拳)이다. 자신에게 맞는 무술을 추구하던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실용무술, 절권도(截拳道)를 만들어냈다. 


    키 172cm, 몸 62kg으로 약간 마른 듯한 신체조건을 가진 그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높은 무림(武林)의 고수가 됐을까? 절권도는 (상대의) ‘주먹(拳)을 막는(截) 방법(道)’일 뿐이다. 싸우지 않고, 싸우더라도 덜 싸우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몸을 만들고,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몸을 가장 실용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라”. 


    천하무적처럼 보이던 그를 누가 쓰러뜨렸을까? 영화 ‘용쟁호투’(龍爭虎鬪)에서 너무 많은 악당과 싸워 지쳤을까? 이소룡은 ‘용쟁호투’ 개봉을 3주 앞두고 쓰러졌다. 1973년 7월 어느 날 축축한 공기가 스미던 홍콩의 저녁, 그는 머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고 잠든 뒤 깨어나지 못했다. 부검해 보니 뇌가 13%나 부어 있었다. 사인은 뇌부종. 향년 33세. 


    3년 전 무리하게 리프트 운동을 하다가 척추 4번 천골신경을 다쳤다. 심각한 허리부상이다. 다시는 발차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들었다. 입원 6개월을 마치고 퇴원한 뒤, 정말 죽을 만큼 수련해서 재활에 성공했다. ‘당산대형’(唐山大兄. 1971), ‘정무문’(精武門. 1972), ‘맹룡과강’(猛龍過江. 1972) 같은, 빛나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재활한 뒤 찍은 것들이다.


    이 때 이소룡은 허리근육통을 줄이기 위해 스테로이드 주사를 너무 많이 맞은 것으로 보인다. 코르티코 스테로이드(당질 코르티코이드)는 염증을 낮추고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가장 높기 때문에 만병통치약으로 꼽힐 정도다. 하지만 면역을 떨어뜨리는 부작용 때문에 오래 그리고 많이 사용할 경우 만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절권도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무술이다. 그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맞았다. 때때로, 통증과는 정면으로 싸워야 했던 게 아닐까? “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보다, 한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더 두렵다”던 그였다. ‘신이 내린 몸’으로 ‘절대 근육’을 자랑하던 이소룡도 스테로이드의 ‘만 번 발차기’에 쓰러진 것이다. “아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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