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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Jul 24. 2024

기차여행

엉킨 실타래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기차는 역시나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작은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그냥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엉켜버린 생각들을 머릿속에 풀어놓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차근차근  실타래를 푸는 

기분으로 생각을 짚어가다 보면 복잡한 미로도 조금은 길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기차는 휙휙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시간을 쌓아가며 목적지에 다가간다. 

아직 실타래를 풀지도 못했고, 

음악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여기까지는 읽어야지 한 페이지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기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다.      


내려야 할 준비를 하며 

머릿속을 가볍게 흔들어 보니, 

엉켜버린 실타래 몇개가 데굴데굴 굴러 머릿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다음번에 그 실타래를 다시 찾으려 머릿속을 헤집으면, 

마치 마술사가 검은 박스에 넣었던 토끼가 비둘기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많은 실타래들은 어딘가에서 토끼가 되기도 하고, 

비둘기가 되기도 한다.      


기차여행이 좋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나의 의지와 관심 없이도 나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의 여정에 무임승차한 것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내가 무엇을 하든지 작은 공간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참 매력적이다. 

실타래가 토끼가 되든 비둘기가 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실타래가 토끼가 되든 비둘기가 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마다 

“벌써”라고 되뇌이게 된다.

"벌써" 무임승차 같은 인생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나고, 

"어느덧"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로 내려설 시간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기차는 

이제 누군가의 목적지를 향해 다시 떠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벌써" 무임승차 같은 인생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나고, 
"어느덧"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로 내려설 시간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기차역을 빠져나오며 그런 생각을 접는다. 

이제부터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의 걸음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타래 하나가 또르르 머릿속을 빠져나오려 할 때, 

마침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놀란 듯 사라진다.     

이제부터 걸어볼까. 


값비싼 여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마침 경적 소리에 놀란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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