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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타와 너구리 라면

by 봄날의 북극

SONATA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음악이 생각나시는지?

아님 자동차?

저는 소나타라는 글자를 보면 "S" 레터링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리고 곧바로 오래전 기억 속으로 빠져 들게 됩니다. 더듬더듬 그 기억의 미로를 헤매다 보면 문득 '너구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제 머릿속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양은 냄비의 뚜겅 위에 잘 익은 오동통한 면발의 너구리 우동 냄새가 어른 거립니다. 그리고... 고철 덩어리가 하나의 배경으로 잡혀 있는 기억과 마주 합니다.

이상한 조합이죠. 소나타, 너구리, 고철. 얼핏 전혀 상관없는 것들 같지만, 저에겐 하나의 회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기억의 장치입니다.


최근 드라마 폭삭 속아수다를 보다가 다시 한번 방금과 같은 일련의 연상작용을 경험했었지요. 성인이 된 애순이가 학교에 불려 가죠. 아들이 선생님 자동차 소나타의 S 레터링을 떼어가서 소나타가 아닌 오나타가 된 사연이었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S"를 가지고 있으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도시 전설이 있었다는 걸요. 그러한 이유로 소나타의 "S"가 수난을 당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또래들 사이에서 더 중요한 건 그 'S'를 떼다 팔면 고물상에 고철 몇 개를 들고 가는 것 보다 훨씬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괜찮은 값을 받아 변변치 않은 용돈을 보충해서 도넛이나 호떡, 떡볶이 같은 먹고 싶은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 저는 그때도 간이 작아서 그러지는 못 했고 가끔 친하지 않은 어떤 친구들이 그러한 걸로 제법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통으로 글자를 떼어 내기도 했습니다. 소나타뿐만이 아니고 다른 차량,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프라이드나 포니, 로체??? 정도였을까 그 레터링 중에는 글씨가 이어진 필기체 형태의 것들은 통으로 떼어내서 팔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차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차를 가질 수는 없어도 그 이름 하나쯤은 손에 넣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포장마차 천장에 그런 차량 레터링이 매달려 장식처럼 되어 있는 곳도 있었거든요.


그날도 친구들이랑 놀기 삼아 고철을 주우러 다니는 중이었습니다. 제 간이 작은 것처럼 대부분의 제 친구들도 간이 작아서 차에 레터링을 떼어 내는 것을 할 수 있는 녀석들은 없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버려진 고철이랑, 못 같은 걸 주워다가 동네 고물상에 갖다 주고 그걸로 도넛이나 하나 먹을 수 있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지요.

학교를 마치고 하릴없이 바닥만 보며 괜찮은 고철을 기대하며 걸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처럼 그날도 허탕이었습니다. 간혹 길가에 세워진 소나타 차량에는 이미 'S'가 떼어지고 오나타가 되어 버린 차가 종종 보입니다.

어쩌다 멀쩡한 소나타 차량을 보면 그날의 허탕을 저거 하나로 보충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유혹은, 가슴 두근두근 몇 번에 입맛만 다시고 지나쳐 갑니다.

친구 한 녀석이 이제 싫증 났다는 듯 "야 오늘 맹탕이다. 이거라도 들고 고물상 가보자."

"저기 좀 더 걸어가면, **가 하는 고물상 있다 아이가 어쩌면 돈을 더 쳐줄지도 모린다."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은 ** 친구.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얄미운 표정, 우쭐되던 그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 **친구.

"그럴까? 일단 가보자"

저기 좀 더 걸어가면 이라고 했지만 상당히 먼 거리를 걸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거리라는 것이 버스정류장 2-3개 정도 떨어진 곳인데 어린 나이에 그 길은 끝날 것 같지 않은 먼 거리였었습니다.


날은 5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목도 마르고 뜨거운 햇살에 머리도 어질어질 허기짐으로 지쳐 갈 때쯤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친구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가까웠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간 녀석 중 한 명의 친구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앞에서 '**야',라고 불렀고 사무실 겸 간이 생활공간처럼 보이는 문이 열렸습니다.

작은 책상이 보이고 아저씨 한분과 할머니도 보였습니다.

**이로 보이는 녀석이 양은 냄비 뚜껑을 한 손에 받쳐들고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양은 냄비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냄비 뚜껑을 받치고 있는 그 위에 꼬들꼬들한 라면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얀 김에 가려진 그 **녀석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일도 하얀 김에 가려진 것처럼 그렇게 또렷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가 '친구들이구나' 했던 말과 '너희도 같이 먹을래 했던 말'.

하지만 그 뒤에 따라붙은 그 **녀석의 말.

"안돼 할머니 나 얘들이랑 친한 친구 아니야"라고 했던 말.

그리고 그나마 친분 있던 녀석이

"야 나도 한 젓가락 하자"고 했던 말.

그러나 **녀석이 "그래 니는 국물 조금 묵어라" 했던 말

고소하고 약간 매콤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던 그 냄새.

국물이라도 조금 묵어라 했던 그 말과 함께 그 녀석이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아직 뜨거웠을 그 양은 냄비를 받쳐 들고 맛있게 먹던 모습.

순간 침이 꼴깍 했고, 그 모습이 창피해서 시선을 돌렸을 때 그 라면의 정체인 너구리 빈 봉지가 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너구리 우동 이라고 적혀 있었을 겁니다 ]

처음 보는 라면.

너구리.

면발이 그전에 먹던 것 과는 달리 굵었던 게 그제야 보였습니다.

"야 그만 무라 많이 무따 아이가" 하며 **이는 냄비를 뺏어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녀석.

'니도 한 모금 줄까?'라고 얄밉게 물어오는 ** 녀석.

'응 나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치아라"라고 말했지만, 눈은 꼬들하고 오동통한 면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곳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지만, 한 동안 너구리 빈봉지와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던 사이로 보이던 면발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 때 즘 출시된 라면이라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한 동안 볼 수 없는 라면이었던 걸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참 지난 후에야 맛보게 되었을 그 너구리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다시마 한 조각도 맛있었습니다.

지금은 포함된 다시마는 먹는 것이다 아니다는 논쟁이 있지만, 그때 그걸 먹는다 안 먹는다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얼큰한 너구리가 생각나네요. 니도 한 입 주까라고 얄밉게 물었던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리고 국물 한 모금을 야무지게 먹었던 그 친구는 누구였을까? 먼 기억 속에서 점점이 낡아져 해져버린 기억이지만 여전히 얄미운 표정의 그 모습은 잊혀지지 않네요.

지금도 라면을 끓이다 보면 하얀 김 너머로 **녀석의 얄미운 표정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 너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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