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질 하는 사람도 요가
오늘은 요가를 쉬고 웨이트를 하러 갑니다.
요가원을 옮기면서 거리가 멀어 매일 가기가 힘들어져 주 2회 정도 요가를 하고 나머지는 원래 운동하던 곳에서 그렇게 웨이트를 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 PT를 따로 받아 본 적이 없는 내 운동 루틴은 체계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기구를 다루는 법과 운동 자세는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유튜브에 정말 많은 고수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다양하고 전문적인 가르침을 주는지 그것만 잘 따라 하면 전문 PT를 받은 것처럼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전문적이고 다양한 가르침을 잘 따라 한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데드리프트시 발의 위치와 골반 힌지의 방향성, 그리고 허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손의 위치는, 세세하게, 세밀한 설명을 보고 있다 보면 마치 듣는 것만으로 운동 효과가 날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하지만, 눈으로 익히고 머릿속에 잘 숙지한다 해도 실제 운동 할 때는 뭔가 잘 못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만 되도 훌륭합니다.
자세를 흉내 내는 것과 그것을 내 몸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성격도, 마음도 제각각 다르지만 몸도 다릅니다.
무작정 자세를 흉내 낸다고 해서 그게 내 몸에 맞는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요가 수업에서도 유연성이 좋은 사람들이, 요가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세를 곧잘 따라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사나의 겉 보기를 따라 하고 있을 뿐 아사나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어떤 아사나에서도 그저 모양에서 그치는 자세는 없습니다. 하나의 아사나에는 내 몸에 대한 이해와 근육들의 쓰임과 관절의 쓰임 그리고 호흡을 통해 내 몸을 이해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간단한 전굴 자세에도 그저 간단하게 몸을 폴더처럼 접는다는 단순한 동작이 아님은 요가 수련을 통해 익혀 가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상체를 숙여 몸을 반으로 접는 동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수많은 의식과 정렬이 숨어 있습니다. 요가에서 전굴은 단지 ‘접는 동작’이 아니라, 엉덩이 관절(고관절)을 중심으로 몸을 접어 나가며 척추의 길이를 유지하고, 햄스트링과 종아리 근육의 유연성과 긴장 상태를 섬세하게 인식해야 하는 자세입니다.
허리를 둥글게 말아 구부리는 것이 아니라, 꼬리뼈에서부터 척추 하나하나를 길게 뻗으며 상체가 ‘기울어지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때 복부와 넓적다리의 접촉을 통해 몸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무릎이 과하게 꺾이지 않도록 하고, 발바닥의 무게 분배를 균형 있게 유지하며, 가슴과 복부는 긴장을 풀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게 다뤄야 하죠.
또한 전굴은 단순한 유연성 테스트가 아니라, 내려놓음과 수용, 자신을 향한 내면의 시선이 닿는 자세입니다.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 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직시하고, 그 경계에서 호흡하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자세에도 이처럼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요가 수련을 지속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몸을 반으로 접는 단순한 동작 조차, 실은 나를 정직하게 마주보게 하는 깊은 내적 작업이라는 것을.
그렇게 요가를 통해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감각은 자연스럽게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이어집니다.
예전에는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를 할 때, 단지 ‘중심을 잘 잡고, 무게를 들고, 허리를 펴라’는 말만을 믿고 따라 했습니다만 요가를 수련하고 나서부터는 무게를 들기 전, 몸의 정렬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발바닥에 체중이 어떻게 분산되고 있는지, 골반은 중립 위치에 있는지, 척추가 자연스러운 곡선을 유지하고 있는지, 어깨는 긴장 없이 안정적으로 얹혀 있는지, 이런 세부적인 신호들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 주도권이 단순히 근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의도와 방향성에 있다는 것을 요가가 알려주었습니다. 스쿼트를 할 때도 단순히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보내며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 코어가 어떻게 서로 조율되는지, 움직임 안의 '대화'를 읽는 감각이 생깁니다.
유튜브에서 본 설명들이 이제는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내 몸 안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체험으로 연결됩니다. 예전엔 동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따라 했지만, 이제는 왜 그 동작이 필요한지와 그 동작이 내 몸에서는 어떤 감각으로 나타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요가는 내게, 운동을 따라 하는 법이 아니라, 운동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비싼 PT를 받는 것도 물론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요가가 선물해 준 몸의 감각과 자기 인식 능력은 나에게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주었습니다.
내 몸의 소리를 듣고,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해지는 법.
요가는 그 ‘느낌의 언어’를 가르쳐주었고, 웨이트는 그 언어를 써보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이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연결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요가를 통해서 몸을 듣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그날그날의 컨디션, 긴장된 부위 그리고 놓치기 쉬운 감각들, 그런 것들을 듣는 법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는 것이 요가가 나에게 알려준 것 들입니다.
몸을 이해하는 힘. 그리고 나 자신을 존중하며 운동하는 방식. 그런 것들은 어떤 운동을 하던지 꽤나 유용한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요가의 수많은 아사나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완성을 보진 못 했지만 적어도 내 몸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압니다.
아사나의 최종 완성도 중요하지만 아사나를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수련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요가의 알아차림을 잠시 내려두고, 쇠질 하러 갑니다.
쇠질에도 역시 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