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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Apr 13. 2022

錢(쩐)이 웬수

눈이 떠져 시간을 보니 아직 한밤중이다. 밤새 내린 눈을 잠시 쳐다보고 다시 자리에 누워있자니 잠은 안 오고 눈만 말똥말똥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그 말을 생각하니 잠자던 화를 다시 깨운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게 돈인데 나는 늘 울고 있는 그 한편에 서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늘 붙어 다녔던 친구 중 하나인 이군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여유도 있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아버님이 군출신이라 살아온 환경도 비슷해 더욱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 졸업 후에는 서로 다른 대학에 다니다 보니 자주 만날 수 없었고 거기다 군입대 후에는 서로 연락마저 두절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후 내가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저녁에 다시 만난 우리는 술잔을 나누며 즐거웠던 지난 얘기에 늦게 까지 일어설 줄을 몰랐고 방송국에 근무한다는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알만한 연예인과 함께와 동석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방송국 PD였던 친구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 후 몇 번을  만나게 된 어느 날 내게 88 올림픽 관계로 자기가 방송국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너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얼마라도 투자를 하면 몇 배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권유하는 친구 말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게도 대운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집사람도 좋아하며 주저 없이 집 이사하는데 보태려고 모아둔 돈을 찾아 친구에게 전달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약속한 일 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연락했더니 일이 좀 늦어진다며 차일피일 미루며 또 일 년이 지나갔다. 방송국에 다니는 데다 압구정에 산다는데 누군들 의심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전화도 자꾸 피하는 듯 하기에 집사람이 방송국까지 찾아가게 되었는데 곧 나갈 테니 기다리라 해놓고는 다른 곳을 통해 사라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나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차마 친구를 고발할 수는 없어 회사 직원을 시켜 그가 몰던 자동차를 끌고 와버렸다. 얼마 후 원금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돈 일부를 가지고 와 차가 없으면 일을 못한다며 올림픽이 끝나면 꼭 갚겠다는 차용증을 받고는 차를 되돌려 주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과 착잡한 마음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의 연락은 두절됐는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횡단보도 반대편에 서있던 그 친구를 발견했지만 그가 나를 알아봤는지 황급하게 돌아서 다른 데로 향하는 그 친구를 바라만 보았다.  전에 방송국에 아는 지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그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월급까지 압류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집사람과 나는 이미 그 돈에 대한 미련은 버린 지 오래됐었다.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그 후에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환장하고 속 터지는 일을 당할 때마다  난 칠뜨기 인가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으로 늦은 후회와 반성속에 지내고 있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일어난 일들은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었다. 마누라 역시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는 게 상책이라 하지만 지인 회사에 투자를 권유했다가 그 회사가 망했다고 투자자들 원금을 갚아주는 그런 것들을 보면 나와 다를 바 없는 Stupid이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 낳고 돈 낳지 돈 낳고 사람 났냐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돈 있으면 염라대왕 문서도 고칠 수 있다고 하니 하여간 돈이 웬수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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