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메마른 요단강을 건너가야만 만가(輓歌) 소리 가득한 북망산천에 묻힐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나마 술과 여행은 나의 낙이요 친구였다. 파고다 공원 계단에 앉아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노인의 모습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조용히 앉아 있다. 가면 뒤에 숨어 솔직하지 못했던 안갯속의 삶을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야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며 보이는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 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한 세상인 것 같았다. 그러나이미 오래전 노땅이 되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지내온 철없던 시간들 이제야 늙은이답게 내게 어울리는 마지막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얼마 전 전립선 이상으로 시술을 앞둔 후배가 형! 후다 까면 누구나 다 똑같더라고 내게 말했다. 나인볼 칠 때 쓰는 말인데 누구나 까뒤집어 보면 걱정, 근심 없는 사람 없더란 얘기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어 다시 잇기 전에는 어디가 안이고 또 겉이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혜자와 안성기의 연기 속에 녹아든 그 눈빛과 동작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나에게 위로와 행복을 나누어주어 고마웠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따스한 봄날 휠체어에 기대어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 모습은 곧 현실로 다가올 나의 잔영(殘影)이었다. 그나마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글 쓰는 것을 끝내며 그 제목 위에 선하나를 긋고 나니 경망스러워지려는 내 머릿속을 다독이며 남아있는 또 하나의 시작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화창한 가을 하늘 위로 날아가는 나의 드론을 상상하며.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시는가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넘고 먼 부엉이 울음 끊이지 않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엔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려마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 일레라.
*채 동선 작곡 박 화목 시인이 쓴 망향의 가사인데 아련한 옛날이 그리울 때 울컥해지려는 그리움을 삼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