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갑작스레 하루가 지루할 것 같다는 느낌에 일찌감치 차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다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용인에 있는 백암행 버스를 탔다. 그렇다고 백암순대가 생각나서 는 아니고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전에 가끔 백암 가는도 중에 내려 산책을 하던 아름다운 동네가 있는데 앞에는 커다란 산봉우리가 마을을 품고 있고 양옆 숲 속으로는 북유럽 어디에 온 것 같은 개성 있는 별장 형태의 멋진 집들이 모여 있어 남다른 분위기의 동네라 한 바퀴 돌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되고 해서 낙엽 지던 계절에 몇 번 들린 기억이 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눈 내린 겨울 같은 때는 적막하고 쓸쓸할 것만 같은 그곳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 외로울 것 같기에 그저 그 마을 풍경만 가슴속에 간직한 채 허전하고 그리울 때 가끔 찾는 곳이다. 하여간 버스가 용인시내를 벗어나 양지라는 곳에 들어서는 그때 왼쪽으로 보이는 어느 동네 모습이 눈에 깊숙이 들어왔다. 전에는 보이질 않았던 곳인데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낮으막한 언덕 옆으로 어디선가 보았던 따스하고 아담한 시골 동네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언덕을 지나면 어느 날 그리워서 애타게 찾아 헤매던 꿈속의 그 장소 일 것만 같은 생각에 이끌려 홀린 듯 급히 버스에서 내려 그 마을 입구를 향해 걸어갔고 그 언덕을 바라본 순간 귓가에 갑자기 김재기의 사랑할수록이란 노래가 들려오는 듯 그리고 누가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꿈속으로 돌아간 듯한 벅찬 마음으로 바삐 언덕 끝에 오르니 내가 상상했던 그런 풍경은 아니었기에 아름다운 상상은 깨어졌지만 그래도 잠시만의 행복했던 마음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또한 느낌이 다른 장소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언덕 옆 동네를 둘러보던 중 갑작스레 그곳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색깔의 실내장식을 한 카페와 그 옆에 붙은 같은 모양의 국숫집이 보였다. 그곳은 오래전 동경 키치죠지 라는 동네에서 들렸던 어느 카페의 그 모습과 똑같은 분위기여서 굳이 말하자면 서로 다른 곳에 입양된 자매가 수십 년 만에 만나게 되는 그런 느낌! 하여간 신기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고 안으로 들어서니 젊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카페 주인은 그 옆 국숫집도 같이 운영하는 듯했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혹시 일본서 살다 오지는 않았는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손님 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곳에서 늙은이가 괜스레 질척 거리는 느낌을 줄까 봐 물어보지는 못했고 하여간 어떻게 이런 시골에 가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모처럼 느끼는 한가로움 속에 여유를 즐기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그만 가볼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국수가 맛있으니 한번 드셔 보고 가라는 주인 말에 결국 국수 한 그릇까지 먹고서야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 그건 분명 일본의 지하철역에서 먹었던 간이 알맞은 산사이 소바 국물 그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루할 것만 같았던 오늘, 괜찮았던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