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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Jan 25. 2023

술꾼

고래들이 사는 세상

올해가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작년에는 검은 호랑이 해라고 했는데 계속 검은 동물들만 나타나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구정날 아침부터 음복으로 시작 점심에도 한잔 하다 보니 정초부터 알딸딸한 하루를 보냈는데 다음날 좀 쉬고 있으려니 술을 즐기는 동창들 몇이 심심한데 뭐 하냐며 모이자는 전화가 왔다. 약속한 술집에 들어서니 구정 다음날 초저녁인데도 사람들이 와글와글 한걸보면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심심하고 외로웠나 보다. 처음잔은 원샷 하자는 친구말에 호기 있게 시작은 했는데 마시다 보니 모두들 마음만은 천하장사 급인데 술도 힘이 있어야 마신다는 말처럼 이젠 어쩔 수 없이  나이 따라 모두 태백 장사 아래로 내려가야만 할 듯이 보이는 게 분명 예전 같지는 않은 체력 들이었다. 술빨은 약해졌지만 그래도 입만 살아가지고 구라빨이 여전한 걸 보면 그야말로 남은 양기가 모두 입으로만 모인 듯 수다스러운 건 전과 다름없었고  건강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나마 몇 명이라도 모여 마실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안주 안 먹으며 술 마시던 사람들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먼저 부르더란 친구 녀석 말에 격한 공감을 하는 애들, 그 말은 맞는 얘기 일 것이다. 술을 급히 마시거나 안주를 소홀히 하는 사람 또 남의 험담을 즐기는 그런 사람은 그야말로 술꾼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같이 한잔한 동창 녀석으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어제 마신술로 종일 기절했었다며 다시는 2차를 안 한할 거라고 앙탈 부리는 걸 보니 숙취에 힘들었나 보다. 그러게 좀 천천히 마시지! 구정 며칠 전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올리고 나서 조상님들에게 말했다. 이젠 바랄 게 없으니 남은 인생 그저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살다 가게 해달라는 말씀만 전하고 일어섰다. 이젠 기력들이 쇠했는지 처음엔 늘 각자 소주 각 일병씩만 하자고  얘기들은 하지만 그런 약속이 지켜진 적은 본 적이 없었다. 오늘 2023년 1월 25일 어제 낮에도 영하 12도였는데 오늘 아침 기온도 영하 17도라고 하니 문득 오래전 겨울에 들렸던 하얼빈의 송화강 주변 경치가 떠오르며 이런 날은 찐한 청요리에 고량주가 제격인데라고 생각하는 난 진정한 술꾼이고 싶다. 이런 추운 날 낮엔 어묵을 곁들인 따듯한 정종이라도 한 잔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장식장 속에 모셔두었던  酒님들에게 내가 떠나기 전 당신들 모두 비우고  떠날 테니 준비들 하시라고 전했다. 술꾼 참 즐겁고 다정한 말인데 남은 시간이 너무 아쉽다.  마지막 좋은 글귀가 있어 친구들에게 전하려 한다.

罔談彼短  靡恃己長 망담피단 미시기장.

이라는 말과 함께 술앞에 장사 없다는말

늘 명심 하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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