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타령

고래가 노는 세상

by 구일권

보증 이란 덫에 발목 잡혀 자갈밭을 걸어야만 했던 지난 날들이지만 다음 생에 전생의 일들을 다기억하고 태어난다 해도 얽히고설킨 인간관계가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말란 법은 없을 것 같았다. 후회와 자책도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을 무렵 지난 안좋았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다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젠 호롱불에 의지하며 세상을 달관(達觀)한 도인처럼 밤길을 걷고 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는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관상이나 손금 등이 변할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 혹시 내 사주팔자도 좀 좋은 방향 쪽으로 틀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남겨두어 본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나이의 한계에 갇혀 지내고 싶진 않다. 말년운이 좋아야 된다는 말 생각해보면 그건 성공의 의미도 있겠지만 well dying 같은 것도 말년의 좋은 운에 속하는 거라는 생각이다. 몇 년 전 존엄사법이 시행된 이래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매스컴 통해 알게 됐다. 나도 늘 생각해 왔던 일로 전부터 나 또한 그런 상황이라면 무의미한 연명 치료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라고 누차 집사람에게 얘기한 적도 있지만 어찌 됐던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알던 모든 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나 험담 없이 그들의 기억에서 빨리 나를 잊어주기 바랄 뿐이다. 요양원. 간병인 듣기만 해도 움찔해지고 우울해지는 그런 단어들은 이미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데 그런 말을 듣기 전에 그야말로 하얀 무(無)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늘이 마지막으로 내게 주는 더 이상 큰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선지 well dying에 관한 책들도 철맞은 메뚜기떼처럼 날개를 달았고 거기에다 이에 관한 무슨 협회니 운동본부 등도 우후죽순처럼 생겨 나는 요즘 세상이다. 운명 이란 자연스러운 건데 사람들은 부쩍 죽음과 친해지려는 듯 보인다. 반면 생활고나 가정사로 인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을 볼 때 삶의 기나긴 고통이 남긴 결과가 참 속절없고 한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온다.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더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서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 그게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아직도 어떤 게 인생의 답인지는 알 수가 없는 세상이다. 현충원에 계신 부모님 산소에 들릴 때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아래 보이는 수많은 작은 영웅들의 비석을 볼 때마다 인명(人命)은재천(在天)이라 했는데 하는 생각속에 잠들어 계신 그분들의 넋을 위로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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