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은 동네라는 강남이 생긴 것도 경부 고속도로가 1970년에 개통됐으니 지금처럼 자리 잡은 지 불과 60여 년도 안되었나 보다. 건물도 별로 없었던 그때 고속도로 입구를 조금 지나다 보면 하이웨이 모텔과 주유소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을 뿐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여간 지금처럼 변할 줄 알았더라면 땅이라도 사둘걸 그랬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미리 알았다 한들 어디 돈이 한두 푼인가, 돈 없으면 그저 공허한 넋두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하여간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지금 봉은사 방면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데 그 길 옆으로는 배 과수원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밖에는 전부 논과 밭들뿐이었다. 문득 그때 그 배밭 주인들과 자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있으나 그건 그저 해본 생각이고 전국 어디던지 개발된 곳은 다마찬가지 겠지만 내가 사는 용인만 해도 낫이나 호미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골프채를 들고 다니더란 우스개 소리도 들리지만 그게 농으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하여간 그렇게 강남이 화려하게 변하는 동시에 강북은 물론 사대문 안의 주거지역도 발전 속도가 늦어 가끔 보면 60~70년대 동네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곳도 많이 남아 있는 현실이었다. 그러면서도 경리단 길이니 가로수길 등 해외를 다녀온 많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동네들이 생기면서 덩달아 성수동 이나 독산동 같은 서울 외곽까지 요즘 트렌드의 핫한 장소로 뜨고 있다고 들린다. 그런데 강남은 룸살롱이나 클럽, 모텔들로 가득 찬 온갖 비리의 온상지로 은밀한 매춘은 물론 마약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니 참 걱정된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다른 얘기로 돌아가서 매춘에 대해 굳이 얘기해보자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봐도 유곽이라고 불리는 공창은 어느 도시던 다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잘 알려진 사창가들은 전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성매매 단속이 심하니 대부분 음지로 숨어들어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고 있지만 전에는 서울만 해도 서울역 주변이나 청량리, 영등포 등 주로 역 주변에 밀집해있었는데 그건 어느 나라나 비슷했고 우리 지방 도시도 대부분 기차역이나 항구 주변에 사창가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이미 그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며 데모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성매매 단속 그건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성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더욱 증가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꽃잎은 빻갛게 멍이 들었다는 노래 동백 아가씨란 영화에서 섬마을 아가씨 엄앵란이 임신한 몸으로 남자를 찾아 서울에 왔다가 서울역 양동 창녀촌에 납치되었던 그런 영화 스토리는 아련한 옛 추억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일본 동경에는 에도 시대 만들어진 공창 요시와라가 있고 오사카 덴노지 근처에도 수백 년 된 유곽이 있었는데 우리와는 달리 정부로부터 묵인된 공창인걸 보면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벌이나 나비가 꽃을 찾기 마련인데 그 꽃밭을 갈아 없애는 그런 규제만이 능사가 아닌 듯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건 그렇다치고 대마불사(大馬不死)라 했는데 S전자 주식은 날개도 없는 듯 보이고 강남의 물 좋은 동네 집값도 주저앉고 있다 하니 세상사 언제 양지 나 음지가 뒤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혼 탁한 시기 인데 80에 벼슬길에 오른 강자아(姜子牙) 강태공을 두고 한말인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 이란 말에 은근한 기대를 품어보며 이럴때 는 그처럼 조용히 세월을 낚으며 때를기다리는게 건강에도 좋을것 같고 코로나 와 전쟁등으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는 이 혼란스런 시기를 잘넘기는 다른 방법은 없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