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닐 때일이었다. 일본서 학교를 다녔다는 아이가 어쩐 일인지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우리 반으로 온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니 교복도 고급 양복 기지로 만든 걸 입었고 검정 단화를 신고 있었는데 생긴 것도 뺀들 뺀들 하게 생긴 것이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살던 녀석 같았는데 담임 선생님도 특별한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러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먼저 줍는 사람이 가지라며 케네디 은화 한 개를 툭 던졌는데 그게 또르르 구르더니 교실 마루 틈 사이로 빠져버렸다. 제 딴에는 애들과 친해지려는 방법인 거 같았는데 하여간 여러 명의 애들이 먼지가 가득한 마룻바닥 아래 지하로 들어가 그 동전을 찾으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결국 동전을 주운 녀석 말고 다른 애들에게는 더욱 미운털이 박혔고 이래저래 애들에게 시달리는 걸 보았는데 처음엔 나도 얄미운 생각에 그냥 보고만 있었지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내가 몇 번 보호해 주었더니 나중에는 나를 빵집에도 데려가고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들고 내 옆으로 와 내가 평소 먹어보지도 못했던 반찬들을 내게 주기도 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어느날 그 친구 집에 까지 가게 되었는데 정원이 커다란 이층 고급 주택인 그집 현관 신발장에는 그 친구 신발들로 꽉 차 있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목을 자른 미군 군화 두 켤래로 만 지낸 나로서는 부러움만 가득한 채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 어머니는 광화문 동아일보사 근처에 있던 귀거래 여관과 다방을 하는 주인 아들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호텔이라고는 별로 없었던 시절이기에 그 여관은 유명한 곳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졸업 후에는 서로 다른 학교로 가는바람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나본 적은 없는데 전에 그 친구 집에 갔을 때 보았던 신발들로 인해 나도 한때 많은 신발들을 모으듯이 가진 적이 있었다.허기야 이런 신발에 대한 욕심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강원도 대화 외갓집에서 혼자 일 년 넘게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이웃 과수원집 아이의 끈 매는 농구화를 본 순간 눈이 돌아가 아침에 눈만 뜨면 그 농구화 생각에 할머니를 못살게 굴었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결국 할아버지가 진해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해 농구화를 사서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농구화를 받아 든 그날의 흥분된 마음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나의 욕심은 그것뿐만 아니라 군대 제대 후 시작된 탈모 때문에 모자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많은 모자를 샀지만 마음에 드는 건 고작 두세 개뿐 이라 언제 날 잡아 아파트 의류 수거함에 모두 넣을 생각이다. 이젠 술이나 시계를 모으는 취미 등은 흥미를 잃었고 골프도 그만둔 지금 이제야 당구나 바둑 삼매경에 빠지고 있는 친구들을보면 오래전 그 과정을 모두 거친 나로서는 모든 게 시들할 뿐이지만 그나마 아직 끈을 놓지 못하고 남아 있는게 있다면 그건 여행과 와인이다. 오래전 한 번 맛본 고가의 와인 몇 개가 있는데 지금 형편으로 마실 능력은 못되고 어떻게 노인 일자리라도 구해 몇 달은 모아야 가능할것 같기에 그냥 머릿속에 담아두고만 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고 그랬는데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내가 못다 핀 꽃 한 송이로 끝나는 거 같아 단풍이 물드는 계절에 우울한 마음만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