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공휴일 빼고는 이른 아침부터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은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대사관 담벼락을 끼고 늘긴 줄이 늘어서 있었던 게 오래전 그곳 풍경이었다. 지금은 미국관광을 목적으로 한 한국인은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어 그런 수고는 덜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한다면 다시 우울감이 생길 것 같다. 긴 줄의 기다림 끝에 올라간 영사관 안에는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로 가득했고 본인이 호명되면 주눅이 들은 상태로 비굴한듯한 웃음을 지으며 담당자 앞으로 가서 즉결재판이라도 받는듯서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자존감을 잃은 그 당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 해병대원이 부동자세로 서있던 그 안의 경직된 분위기를 그나마 누그려 뜨려 주는 것은 커피나 도넛등을 판매하는 카트가 돌아다니기 때문이었고 다행히 심사에 통과되어 밝은 표정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자를 거절당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든 걸 잃은 듯 절망스러운 그런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창구의 담당 영사가 여자 이거나 백인 영사는 까다롭다는 소문에 그들을 피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창구 앞에 서면 영사보다도 더고압적인 자세로 신청인을 대하던 한국인 통역담당자인지 하는 사람의 태도에 모멸감 마저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외국 대사관 내 한국인 직원의 갑질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로 특히 일본 이나 홍콩 영사관의 악명 높은 한국인 직원의 횡포는 외무부 여권과 직원 몇몇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갑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나있었다. 하여간 '가는 세월'을 부른 서 선배는 미국대사관에 비자신청 하러 갔다가 모멸감을 느끼는 바람에 절대 미국은 가지 않겠다며 그 자리에서 여권을 찢어 버린 적이 있다고 어느 날 밥 먹는 자리에서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오직 했으면 그랬을까! 그분 위기를 안다면 누구나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시간이 흘러 용산 미 8 군내 퍼블릭 골프장이나 오산 비행장 내 그리고 성남 미군 골프장을 가끔 다니던 나는 그곳에 갈 때면 문득 오래전 일들이 떠오르며 그 당시 그까짓 미국 한번 가려고 개고생 했던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여간 미국과 다름없는 한국 내 미군 시설들은 여기가 미국인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모든 게 미국 어느 도시의 분위였고 내가 하와이 군인 골프장에 와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되었다. 그 안의 교통 법규나 표지판등 모든 게 미국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골프 라운딩이 끝나면 영내의 식당에서 스테이크에 와인도 마시고 가끔은 슬러트머신도 하며 굳이 미국에 가지 않더라도 그분 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 여권 지수 2위로 이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저런 옛날일을 생각해 보며 얼마 전 해외 한국 영사관 직원의 비리나 갑질이 있었다고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어하는 말인데 지금 중국을 포함 동남아 나 몽골 그리고 구 소련 연방 국가들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한국에 오려고 비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혹시 한국 영사관 직원들의 횡포는 없었는지 옛 기억이 떠올라 노파심에 질문을 던져 본다. 이제 경제나 군사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 그위상에 걸맞은 행동 해야지 우리보다 못 산다고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