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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Feb 19. 2023

인명재천(人命在天)

고래가 사는 세상

나와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중에 별명이 오동추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별명은 내가 만들어 주었는데 그 친구는 무상하게도 60대 초반에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수산업에 종사하던 그 친구는 늘 새벽 경매 때문에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 속에다 술과 친구를 좋아했기에 가락동 시장 안에 있는 그의 가개는 늘 술친구들로 북적거렸는데 얼큰히 취기가 오른 후 그 친구가 늘 가는 노래방에서 목 터지게 부르던 노래는 언제나 " 불나비 "그 단 한곡뿐이었다. 이유는 지독한 음치였던 그를 소음공해라며 친구들이 더 이상 못 부르게 마이크를 압수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생각해 보니 그게 그 친구의 운명을 암시한 듯했고 거기에다 혹시 내가 지어준 별명 때문은 아니었는지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 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아 오동동이냐  는 그 친구와 한잔 할 때 가끔 내가 장난 삼아 부르던 옛날 노래였는데 이제 그 기억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반면 올해 95세 되신 작은 이모님은 20여 년 전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여기저기 암이 전위가 됐다는 소식과 함께 얼마 못 사실 것 같다는 주위의 얘기가 들렸는데 허리만 구부러지셨지 지금까지 맑은 정신으로 그림에 심취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는 걸 보며 느끼는 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에 모든 병의 결과를 함부로 예단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여러 명의 지인과 학교 후배들이 허무하게 이 세상 떠나는 걸 보며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과 함께 가는덴 순서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고 있었다. 하여간 가끔 먼저 떠난 사람들의 묘소를 찾을 때 느끼는 것은 산소의 크기나 비석 색깔만 다르지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데다 쉴 공간조차 제대로 없는 우리네 산소들을 보면서 오래전 마닐라 근교에서 보았던 호화로운 장식에 에어컨까지 있던 그런 호화묘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을 산책하며 나무 그늘 아래서 차분하게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런 묘지들이 자리한 동네 풍경이 부러웠다.살아 진천 죽어 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이란 말이 있는데 내가 용인 산지가 어느새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풍수지리 운운 하면서 전해지는 얘기가 좀 와전된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의 후손들이 그덕을 받았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는 버릴수 없는게 사실이다.하여간 이번 병원에 갈 때는 잊지 않고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를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며 언젠가 먼저 떠난 친구들과 해후(邂逅)는 천상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다시 한번 뭉치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아 있다. 어제는 고교동창 부인이 소천하셨다는 부고 문자가 왔기에 찾아간 장례식장 영안실에 홀로 남은 친구를 보니 역시 내가 먼저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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