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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Mar 10. 2023

소소한 일상

고래가 사는 세상

전에 동경 와세다 대학 근처 어느 동네 골목길에서 neighborhood coffee라는 이름의 커피점을 본 적이 있는데 꽤 괜찮은 이름 아닌가요? 난 그 이름에 이끌려 가개앞 의자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 없이 앉아 있었어요. 너무 걸어서 지치기도 했고요. 그때 문득 생각나는 말 '기회는 거북이처럼 왔다가 토끼처럼 지나가니 don't waste my time'이었지요. 그런 말 누가 모르겠어요! 그 기회를 잡기가 힘드니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이 고달픈 거겠지요. 여행의 때가 묻어있는 오래된 가방을 버리지 못하듯이 지나간 시간 속에 감춰진 미련들을 품고 사는 내가 모든 걸 버리고 훨훨 날아갈 때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러고 보면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는 얘기 같더군요. 오늘 새벽꿈에 정말 오랜만에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하얀 모시적삼을 입으시고 집을 찾아오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손을 잡고 안으로 모셨어요. 얼마 전 정릉 봉국사에 모셔진 외할머니를 처음 뵙고 왔었는데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셨나 봅니다. 점심에 쌀국수와 김밥을 앞에 놓고 어제 마시다 맛이 별로라 남겨두었던 와인 뚜껑을 다시 열어 한 모금 삼키니 어제 보다는 좀 나아진 거 같더군요. 사실 요리 할 때나 쓸려고 남겨두었는데 결국 다 비워 버리고 말았어요. 집에서 마시는 낮술은 나를 편안하게도 만들지만 지나간 일들을 깨우는 바람에 그 번뇌의 고리를 끊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TV에서  어느 어린 여자 아이의 상사화라는 노랫소리가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갈듯이 애절하게 들려 오더군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상사화가  내 생일즈음 만개 한다는데 꽃무릇이라 불리는 상사화 그 소리가 내게 스며들어 가슴이 시려 옵니다. 초혼 이란 노래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사 애달픈 사연 모두 담은 것 같았습니다. 긴긴 겨울이 지났는데 왜 떠나려고 하느냐는 말을 뒤로 무심코 나를 보내는 시간이 올 때 나를 부르지도 원망도 안 했으면 좋겠기에 집사람에게 "나태주의 울지 마라 아내여"라는 시를 남기고 싶습니다. 어느새 젖어오는 술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는  천상병 시인의 글 속에서 나를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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