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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Jun 16. 2023

왕십리 똥파리

고래가 사는 세상

왕십리역은 가끔 분당선을 타고갈때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거치는 역이기는 하지만 딱히 볼일이 없어 밖으로 나가본 적은 몇 번 되질 않는다. 5~6년 전인가 TV에서 우동 만드는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던 일본 우동집이 한양대역 근처에 있다길래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찾아가던중 옛날 학교 다닐 때 추억들을 떠올려볼 겸 일부러 왕십리역에서 밖으로 나와 한양대역까지 걸어갔다. 벌써 50여 년이 훨씬 지났기에 되돌려볼 만한 기억들이 그렇게 신통치는 않지만 그래도 남은 기억들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학교 주변 모습에 잠시 당황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근동 저 안쪽인가에 유공 기름 저장탱크들이 있어 늘 흙먼지 날리며 들락 거리던 트럭들, 그리고 그 가는 길옆에 쪼르륵 줄지어 있던 소위 니나노집들이 떠올랐다. 그 주막 들은 신입생 환영회나 군입대 때 그리고 제대 후 복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가끔 찾던 곳으로 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막걸리를 딸아 주던곳인데 그 기억이 새롭다. 버선에서 나는 건지 쿰쿰한 메주 냄새 같은 것이 가득한 좁은 방에서 우리 젊은 청춘들은 젓가락을 두들기며 고래 라도 잡을듯 패기넘치는 밤을 즐겼었다. 학교 길건너편에는 몇 개의 당구장과 새 다방 이 있었고 또 내가 단골인 35원에 계란 넣어주던 라면집도 있던 곳인데 대충 어디쯤인지는 감이 왔다. 커피 마실돈은 남겨놔도 늘 먹고 싶던 99원 하던 오뎅백반 먹을 생각은 엄두도 못 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간 늘 학교에서 성동경찰서 앞까지 가는 데모 행렬에 서서 핏대를 세우며 구호를 외치던 그곳에서 노인이 된 지금 나는 그 길을 다시 걷고 있다는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동네를 왕십리 똥파리라 불리며 무슨 파리로 시작되는 샹송에 빗대어 장난삼아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이유를 짐작해 보건데 옛날부터 그동네에 채소밭들이 많아 거름으로 주던  그인분 냄새 때문 인 것 같고 또 살곶이 다리라 불리던 중랑천 하류? 인지 그곳에 광나루나 뚝섬 가는 기동차에서 밤새 버리던 그 분뇨 냄새 때문에 왕십리 똥파리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어찌됐던 근처 식당 같은곳에 가면 여기저기 보통 파리보다 훨씬큰 놈들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똥파리 였던것 같다. 돌산 위에 세워진 학교는 그래도 공대로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던 곳이며 청산에 살리라 라는 한국 가곡등 많은 곡을 작곡하신 분이 총장님으로 계시던 그런 시절이었다. 근간에 직접 캠퍼스를 둘러보진 못했지만 지금은 의과대학까지 생겨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듯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찾은 가조쿠란 우동집, 그런대로 맛을 내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일본 우동맛은 아니었으나 덕분에 옛 추억을 소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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