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따라 삼만리

취경전

by 구일권

내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드라이버는 혼마 퍼시몬을 사용했다. 헤드를 감나무로 만든 건데 공에 맞는 감촉과 반발력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 좋았던 느낌을 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반들반들하게 윤이나는 채로 잘 보관하고 있다. 요즈음은 드라이버 헤드가 엄청 커졌고 과학적인 장비의 발전으로 공이나 신발까지 최첨단 기술로 만드니 골프가 점점 쉬워져 그 매력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골프를 그만둔 지 꽤 오래됐지만 생각해보니 골프장을 이곳저곳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정글 속에서 원숭이들이 뛰놀며 타잔이라도 곧나 올 것 같은 말레이시아 랑카위 골프장부터 방울뱀에 겁먹었던 LA 테 마쿨라 골프장 그리고 쥐라기 공원 촬영 장소였다는 하와이 골프장 등 지금까지 생각나는 곳들이 너무도 많다.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는 엄동설한에 추운 줄도 모르고 눈 위에 노란 공을 올려놓고 때린 공이 눈더미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공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 그런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골프 하면 푸른 초원을 향해 냅다 쌔려 버리는 유쾌, 통쾌, 상쾌 그 맛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늘 즐거운 날만 있는 건 아니다. 그날 같이 라운딩 하는 동반자가 누구냐에 따라 기분이 상해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았다.오래전 골퍼가 카트를 직접 운전할 당시 카트를 탱크처럼 몰며 저혼자만 타고 멀리 달아난다거나 매너나 룰은 기본인데 골프를 잘못 배워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난 그럴 때마다 따끔한 충고를 서슴지 않았다.공이 홀컵과의 거리가 먼거리에 있는데도 OK를 달라고 칭얼 대거나 OB만 나면 멀리건을 부르짖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들은 점점 동반자들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골프에 대한 흥미마저 잃어 결국 그런 사람은 골프를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치가 아름다운 골프장에서 좋은 동반자들과 함께 기분 좋게 라운딩을 끝내고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그 맛이 골프를 나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제주도부터 전국의 골프장 이곳저곳 많이 다녀 봤는데 한국의 골프장은 대부분 악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들이 많아 군대 산악 행군하는 것 같은 힘든 코스들이 많았다. 하여간 내가 제일 많이 다닌곳은 분당에서 가까운 남서울 골프장과 용인 88cc인 것 같다. 특히 남서울 골프장은 울창한 나무숲과 꽃으로 가득한 자연스러운 조경으로 항상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서울서도 가까운 곳이라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장점에 관리도 잘돼 매년 매경 오픈이 열리는 명문 골프장으로 골퍼들이 아끼는 골프장중 하나라 생각한다. 어디에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가 있다는 것까지 누구보다 잘 아는 코스들 이기에 늘 자신만만하게 찾는 골프장이었지만 유리알 같은 그린에 무릎을 꿇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온 적이 많았던 곳이며 특히 밤꽃이 필 때면 지금도 기억되는 옛 생각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제일 많이 간 곳은 태국이다. 그곳에서는 골프장 관련 일을 한적도 있기에 골프와 늘 가까이 지냈는데 여름엔 평소에도 더위가 보통이 아니지만 스콜 같은 비가 쏟아진 후에는 사우나 증기탕 속에 들어간 듯 지열이 대단해 어질어질할 정도로 더웠다. 그러나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아름다운 남국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데다 저렴한 골프비용에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은 물론 잠자리까지 완벽하니 6시간 정도 날아가는 피곤한 일정인데도 많은 한국 골퍼들이 태국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하여간 한국 골프가 지금까지 온 길을 뒤돌아보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이며 특히 구옥희 같은 초창기 선수들이 우리 여자골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그 후 많은 한국 여자 프로 선수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던 힘겨운 시절 골프를 모르는 사람들도 박세리 플레이 하나에 감탄과 환호로 성원을 보냈고 그의 우승이 국민들의 기를 살려준 덕분에 우리는 회생할 수 있었다.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지금 국내 대회의 골퍼들 실력은 세계 최강임을 보여준다. 인구로 보면 비교도 안 되는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 벽을 넘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에겐 남다른 DNA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태국에서 태국 사람들이 골프를 하는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었는데 요즘 와서는 태국 여자 프로선수들이 LPGA에서 우승은 물론 늘 상위권에 오르는 거나 여자배구도 강해진 걸 보면 그동안 태국도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매일 내 앞마당처럼 놀던 파타야 씨암 컨츄리 클럽은 언제부터인가 매년 혼다 클래식 골프대회를 열고 있으니 세월이 흐르긴 많이 흘렀나 보다. 몇 년 전인가 혼다 클래식 파이널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태국의 아리아 쥬타누간이 실수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박인비에게 우승컵을 내준 바로 그 골프장이다. 골프는 접었지만 가끔은 하비 페닉의 골프 지침서 리틀 레드북의 글들을 생각하며 마음은 푸른 잔디 위로 날아간다. 밤새며 얘기해도 모자라는 골프 얘기는 꿈속에서도 그날의 실수를 만지작거렸다. 지나간 시절이 아쉽고 그리울 때면 듣는 옛사랑의 트럼펫 소리에서 꽃피는 봄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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