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른 아침 플러싱에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내려 다시 배터리 파크 앞에서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가는 무료 페리를 타고 가면서 자유의 여신상 옆을 지나 또 한 번 열차로 갈아 탄 뒤 5~6 정거장 인가를 가야 내가 일하는 Grocery (식료품점)가 있었다. 처음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간 머나먼 그곳에서 한국인 주인아주머니는 내게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일주일만 지나면 다들 그만두는데 정말 이일을 할 수 있겠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열심히 해보겠다고만 말했다.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 있던 그 가개 에서 나는 종일 쉴틈도 없이 생선에 얼음 채우는 일부터 양동이의 꽃다발 물 갈아주는 일등 잔일들도 많았고 때로는 지하창고에서 맥주나 음료수 박스를 위로 옮기는데 주인은 나이 먹은 나를 배려해선지 그런 일은 시키질 않았다. 같이 일하던 남미 쪽 친구는 콜라 네 박스 정도는 가뿐하게 지고 올라오기에 나도 시도해봤지만 두 박스도 힘에 부쳐 낑낑거리던 나를 주인아주머니가 본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아침 허리가 무너져 내리는 통증에 며칠 쉬고 싶다는 연락을 했더니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냐면서 이런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 다른 일 찾아보는 게 좋겠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충고에 결국 다시 센트럴 파크의 다람쥐 신세가 되었다. 얼마 후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만들어둔 운전면허가 있었는데 마침 여행일을 하던 아는 선배로부터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경험 쌓는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맨해튼 32번가 근처에 있는 3평 남짓한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 선배는 30인승 정도의 중형 버스와 벤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벤을 운전하며 소규모 가족단위 여행객들을 태우고 메릴랜드 부타 아틀랜틱 카지노와 보스턴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한 사라토가 까지 돌아다녔다. 맨해튼 관광 때는 손님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사이 그곳 주차비용이 장난이 아니기에 주위를 돌며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 마켓에서 산 도시락을 운전 대위에 놓고 늦은 한 끼를 때우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 국내는 외환 위기로 환율이 두배나 오른 상황이라 손님들로 받은 팊은 미국서 공부 중이었던 아이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수입은 일정치 않았고 그 선배와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일단은 복잡한 뉴욕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또 다른 일을 찾아 LA로 떠났다. 일 년여를 보냈던 뉴욕 은 향신료 같은 맛과 다양한 멋을 갖춘 거대도시였다. 맨해튼 지리를 익히려 한 달 동안을 월가(NYSE)가 있는 3가부터 맨해튼 북서쪽 116가에 있는 콜롬비아 대학까지 오르내렸고 좌우로는 브로드웨이를 따라 종일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얼마를 걸어 다녔는지 모른다. 미스 사이공이나 캣츠 등 뮤지컬 간판을 보며 걸을 때나 뉴욕주립대 건물 앞 공원 근처에서 핫도그에 캔맥주를 마시며 피곤함을 삼킬 때는 나도 뉴요커 가 다된 기분이었다. 수요일 에만 버거킹에서는 와퍼주니어를 99센트에 팔았는데 콜라 등 모든 음료는 무제한 마실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던 하염없는 뉴욕 생활이었지만 지금은 그매퀘한 뉴욕 지하철 냄새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으며 지나고 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게 우리의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 시기가 한참 지난 어느 날 나와 마누라는 보스턴 하버드 대학 앞 카페에 앉아 있었다. 색색의 빛깔이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로 기분 좋은 햇살이 따사로웠다. 지난 시절을 보복하는 심정으로 다시 찾은 보스턴이었고 몇 번을 왔어도 존 하버드 동상의 발을 만져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손주들이 이대학으로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MIT 등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모여 있고 레드삭스와 맥주 새뮤엘 아담스가 있는 보스턴은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찰스강에서 여유롭게 노 저으며 조정 연습하는 학생들과 물레방아 터빈이 달린 유람선에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은 오래전 영화에서 보던 미국의 풍경 그대로였다.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대학 앞 카페에서 와인 한잔 하고 싶다던 마누라 그 동네가 좋긴 좋았나 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세계의 짙은 향이 배어 있고 잠들지 않는 뉴욕이 세계 제일의 도시인 것은 틀림없었다. I love New York.
사라토가(Saratoga) 뉴욕에서 차로 4시간 걸리는 유명한 광물 온천으로 마시는 온천으로도 유명한 뉴욕주에 속한 도시이며 온천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의 도시로 뉴욕필의 여름학교와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열리는 부촌으로 알려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