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살 때쯤인가 진해 육군대학에서 교육을 받게 된 아버지 뒷바라지 때문에 엄마는 나를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대화라는 곳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신 외할아버지 댁에 나를 일 년 정도 맡겨둔 적이 있었다. 그 동네는 앞에도 산이요 뒤에도 산이어서 해도 일찍 떨어지는 데다 전기도 안 들어왔던지 매일 저녁이면 남포라는 석유등에 불을 붙이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처음 엄마와 헤어진 후로는 엄마 생각에 울다가 매일 할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고 낮에는 관사와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언덕에 올라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가 엄마가 있는 곳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가 산허리를 돌아 저 멀리 살아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내는 동안 나는 산골동네에 적응을 했고 교장 선생님 외손주라는 크레디트 하나로 정류장 부근 구멍 가개에서 눈깔사탕 하나 정도는 얼굴만 내밀어도 가져올 수 있었다. 주위에 널린 게 감자나 옥수수 지만 나는 군것질 거리를 찾아 평창 장날이 되면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곳도 튀긴 강냉이나 과줄 그리고 갱엿 정도가 전부였지만 장터 그분 위기 만으로도 늘 기분이 설레었다. 장난질이 심해 가끔 할아버지에게 야단도 맞았지만 무소불위( 無所不爲 )였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여유롭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일과는 매일 물레방아가 돌고 개울물이 힘차게 흐르는 관사 아래 냇가에 내려가 미꾸라지를 잡아다 닭에게 주는 거였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그 여울의 돌 굴리는 듯한 위협적인 물소리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몇 년 전 후지산(富士山)을 마주 보고 있는 도시 시즈오카의 후지노미야( 富士宮 )에 갔을 때 그곳에서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시골마을 대화의 그 개여울과 똑같은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붉은빛을 띠며 힘차게 흐르는 그 개울 속에서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그 물빛 속에 투영되는 나의 어린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동전 속의 후지산은 학생 시절 나에게 꿈을 실어 주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후지산(富士山)은 기를 느낄 수 있는 영험한 산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백두산도 하늘에서 볼 때 그 아름다움과 웅장한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며 두산 모두 분화(噴火)의 조짐이 보인다는 우려스러운 소식에 어디든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학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잠들었던 용(龍)이 깨어나 어떤 결과를 낳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후지산 근처에서 보게 된 옛 추억과의 만남에 아름답던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정릉 봉국사 절에 모셔진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워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날 찾아뵈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