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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Jan 03. 2024

 생각 속에 저무는 하루

고래가 사는 세상

오래전 태국 파타야에 머물 때 서양 영감들이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국의 젊은 여성을 태우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퇴직 후 연금 타는 노땅들로 인생의 마지막을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동남아시아를 택해 온노인들로 알고 있다. 그때는 부러운 마음에  나도 늙어서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닌 듯싶다. 술친구들도 하나둘 줄어가는 마당에 술 먹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애들 때문에 술자리도 시들해지고 그래서 가끔 당구모임에도 가보지만 용인서 선릉까지 지하철로 다녀오려면 그것도 지친다. 또 치매 예방에 좋다길래 오래전 중단 했던 타이젬 바둑을 둬 보지만 그것도 3~4판 두고 나면 맥이 풀린다고나 할까, 하여간 이래저래 활기를 불어넣어 줄일 은 여행 밖에 없는데 노인들이 흔히 가는 지하철 여행 그런 거 말고 낯선 도시에 내려 술 한잔하고 돌아오는 여행을 생각하지만 그것도 당일치기는 뭔가 심적 부담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를 보내는 게 마땅치 않다. 이제 장거리 해외여행은 어렵지만 5~6시간 거리의 나라는 아직도 갈만하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다 다녀온 나라들이지만 그래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도시에서 반바지의 가벼운 차림으로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건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남은 시간을 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은 항상 품고 있지만 걸리는 게 많아 항상 생각만 하다 주저앉고 말았다. 친구 중 한 녀석은 오래전부터 오지 여행을 즐겨했는데 30여 년 전 비자받는 데만도 몇 개월씩 걸리는 키르기스스탄 같은 곳에 가서 여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새해라고 미얀마 양곤에서 그런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해왔다. 물론 부유한 집안의 친구라 여유가 있어서지만 정말 팔자 좋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며 돈이 많다고 쓸데없는 짓하는 인간들 보다는 훨씬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놀러 오라는 친구말에 미얀마 정부가 안정 됐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전에 뉴스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은 아닌 듯 평온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친구 말에 언제 날 잡아 방문하겠으니 조신하게 지내라 전했다. 따듯한 미얀마 얘기를 하다 보니 어찌 됐건 이런 겨울날 생각나는 건  아오모리-아키다 구간의 스토브 열차 안에서 오징어 안주에 사케를 한잔하거나 눈 내리는 하코다테 이자카야에서 맘껒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얼마 전 사다 놓은 일본 라면으로 속풀이를 해봤다. 공항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울함이 가시는 요즘 나의 일상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서라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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