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석화 한 상자를 보내왔다. 내심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석화 깔 생각을 하니 벌써 팔이 후들들 떨리는 기분이다. 집사람은 굴을 보자마자 잽싸게 화이트 와인을 사 온다고 강추위를 무릅쓰고 마트에 갔다. 사실 석화는 겨울에만 잠시 맛볼 수 있는 거라서 워낙 굴을 좋아하는 집사람은 수시로 굴을 사다가 굴전 이나 무침, 굴떡국등을 해 먹곤 했다. 그러나 일반굴은 노로바이러스 인가 때문에 생으로 먹기는 좀 찝찝해서 와인과 함께 할 수 없으니 늘 아쉬웠는데 모처럼 석화를 보게 되니 그 맛을 기억하는 마누라는 총알처럼 마트를 향해 달려 나간 거다. 더군다나 늘 와인과 안주에 진심인 우리는 안주 선택에 대해 늘 고민해 보는데 레드 와인은 대부분 육류와 함께 즐기지만 화이트와인은 경험상 궁합이 맞는 음식이 너무 많아 선택에 따른 고심을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최고의 궁합은 샤도네이 보다는 쇼비뇽블랑과 함께 석화나 문어, 농어, 연어등 흰 생선살 위주로 올리브 유에 레몬으로 맛을 낸 카르파쵸가 제격이라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고집하게 된다. 더구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에 나온 싱글 몰트 위스키와 석화가 잘 어울린다는 그 말을 올해는 제대로 경험해 볼 생각에 벌써 그 기대감으로 가슴마저 두근 거린다. 올겨울도 석화뿐만 아니라 방어나 과메기 그리고 늘 생각나는 황태구이만큼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라 점점 나이 들어 감에 따라 더욱 이들에 대한 애착이 끈끈해지는 것 같다. 제철에 따른 좋은 음식들을 잘 챙겨 먹음으로 술 마실 기운도 생기는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며 철칙이라 안주를 소홀히 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편치 않았고 또 그런 친구들 중 여럿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안주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시쳇말로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찌 됐든 간에 유럽이나 호주등에서는 석화가 너무 비싸 맘껏 먹을 수 없다는 말에 그래도 석화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게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그러나 연말부터 연초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줄곧 마셔 돼 몸이 피곤하다는 얘기를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했더니 좀 자중하라며 간에 좋은 숙취 해소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이를 잊고 좋은 안주만 있다면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나지만 오래 사는 것보다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갑진년 청룡의 해라는데 아직 구정이 남아 있으니 그때 까지는 건강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좀 쉬어갈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게 내 의지대로 된다는 장담은 못할 것 같기에 그냥 술리(酒理)에 따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