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가 가져다 안방벽에 걸어놓은 동양화 하나가 있었다. 바다를 뒤로 서있는 정자 그림인데 그곳의 배경은 양양 낙산사 근처의 의상대라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아버지 여자친구라는 얘기를 이모로부터 듣고 나니 그림을 늘 보게 되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아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먹물을 풀어 티가 잘 안 나는 바위 등 여기저기 덧칠을 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짐을 느끼는 그런 심술을 부려 봤다. 그런데도 가끔 오시는 아버지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시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작품은 완벽하게 성공하였고 마음속에 상쾌한 웃음만 새어 나왔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 보니 그 그림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후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때인가 여름휴가를 낙산 근처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근처에 그때 그 그림에서 보았던 의상대 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알 수 없는 감회에 젖어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고 내가 장난질 친 그 그림의 실제 장소를 보게 된 것이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은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아름다운 장소를 그려주셨던 그분에게는 정말 죄송했다는 마음을 늦게나마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찾게 되는 낙산사 홍련암, 그 가는 길의 의상대는 특히 겨울에 더욱 찾고 싶어 지는 나만의 여행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2~3 시간 걸려 도착하는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배호의 파도를 생각나게 하는 아련하고 그리운 내 마음이 담긴 그런 곳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숨 가쁘게 절을 하고 홍련암을 나설 때 암자뒤로 보이는 풍경은 차마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동해의 절경이었다. 바다 저편으로부터 밀려오는 흰 파도를 안아주는 큰 바위, 그 위로 솟구치는 하얀 물거품 속에 나의 모든 번뇌와 망상 함께 쓸려 가기를 바라는 늘 그런 마음으로 그곳을 찾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강릉 중앙시장 안에 있는 삼숙이 매운탕집에 들러 소주 한잔 곁들이는 즐거움 또한 오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나만의 여행 방법이 되었고이런 시간들과 함께 영원한 여행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