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스타

취경전

by 구일권

80년도 중반만 해도 인도지나 반도에 있는 나라들 중 태국을 제외하고는 전부 국가안전 기획부에서 특정 국가 해외여행 허가서를 받아야만 갈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H호텔 회장이 나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사이공( 호찌민)에 호텔을 하나 지으려는 계획이 있는데 대신 가서 여러 가지를 알아봐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고 얼떨결에 수락은 했지만 베트남을 가는 여행 허가를 받는데 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고 힘들게 허가서를 받은 한 달 후에야 출국할 수 있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사회주의 국가이며 오래전 우리와 피 터지게 싸웠던 베트콩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숨길수 없었으나 긴장과 호기심 반반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도착 후 공항에서는 별 묻는 것도 없이 소지한 돈만 체크하더니 쉽게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도착 후 체크인을 하려니 여권은 경찰서 확인 후 호텔에서 보관한다고 했다. 여권이 없어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일단 환전부터 하려고 100$을 주니 먼지에 쌓인듯한 고무줄로 묶은 여러 개의 뭉텅이 돈을 내주었는데 받아 들은 돈 냄새 또한 좋지 않았다. 호텔은 7층 건물로 기억되는데 분위기는 영화 인도차이나 에서 본 그런느낌 이었고 엘리베이터는 아주 오래된 오스틴 회사 제품이었는데 얼마나 관리를 잘했는지 소음도 없고 신주로 된 엘리베이터의 툭 튀어나온 버튼은 금처럼 반짝거렸다. 그리고 복도 끝에는 늘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사람 으로부터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맥주나 한잔 하려고 꼭대기층의 바에 올라갔더니 손님들도 별로 없이 한산 한데 아주 멋진 아오자이를 입은 여종업들로 가득했다. 홍콩 호텔에서 근무했다는 매니저 말에 의하면 매주 금요일 에는 모두 아오자이를 입고 나온다고 했다. 롱드레스를 뜻하는 아오 자이의 그 시스루 하고 화려함속에 감춰진 가녀린 몸매의 그 자태는 모든 남자들을 쓰러뜨리고도 남을듯한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시내를 돌아보던중 벤탄 재래시장에 가득 쌓인 미제 물품들은 월남전 당시 남은 물건들인지는 잘 모르지만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이 자본주의 때를 완전히 벗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하얀 아오자이에 스쿠터를 타고 학교 가는 여학생들의 매혹적인 뒷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사이공의 아침 풍경중 하나였다. 미군과 한국군이 월맹군이나 베트콩과 죽기 살기로 싸웠던 나라 베트남은 익히 많은 베트남 전쟁영화를 통해서 얼마나 참혹한 전쟁이었는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군생활을 하던 1971년도는 베트남 전쟁 막바지였는데 매스컴에서는 투이호아 나 다낭, 나짱에 주둔하던 한국군의 승전보만 연일 보도하던 때였다. 결국은 패전국이 된 미군을 따라 우리도 철수하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참 무의미한 전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부정부패가 만연 했고 국가지도자의 무능과 행태는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해외도피 사건과 닮은꼴이었다. 그 후 보트피플 등 그들의 비참했던 사연들을 남기며 우리에게서 점점 잊혀 가고 있다. 우리 또한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 우리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켰고 지금까지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 월남전으로 인해 우리 국가발전에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젊은 목숨을 담보로 이룬 것이기에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도 없으며 라이따이한 등 지금까지 책임지지 않는 안 좋은 흔적은 두고두고 해결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간 김에 월남전 당시 우리군 통합 병원이 있던 붕타우 에 가봤더니 마사지 간판만 여러 개 보이는 황량한 동네였는데 공산국가인 그곳에 마사지 간판이 있다는 게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그곳에는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이나 대만 사람들로 성황 중이라 했다. 월남전 당시 붕타우 가는 길은 우리 건설사가 만들었지만 내가 갔을 때는 벌써 일본이 재팬 브리지니 하는 다리도 만들어 주며 공을 드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와 베트남의 외교관계는 지난 월남전으로 인해 남아 있는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터라 우리는 진출할 생각도 못하던 시기였지만 어부지리에 능한 일본은 일찌감치 베트남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세월이 흘러 좀 늦었지만 지금은 베트남 여러 지역에 많은 기업들과 교민들이 진출해 있고 또한 한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베트남을 다녀가고 있으며 국제결혼을 통해 그들과 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이 빨리 발전해서 과거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으면 하는 마음이며 그나마 베트남 축구를 한 단계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 같은 사람이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굿 모닝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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