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황금의 땅을 가다

페루 쿠스코

by 구일권

88 서울 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인가 나는 마이애미에서 일정을 마치고 사람들과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했다. 처음 방문하는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6.25 참전국이며 유명한 커피 산지 이자 마약의 왕국이라는 정도밖에 몰랐다. 호텔에 도착하니 많은 경비원들이 경기관 단총을 들고 호텔 주변을 경비하고 있었는데 그 살벌한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반정부군이나 마약 카르텔 때문이라 말했다. 다음날 소금 성당 등 몇 군데를 관광 후 저녁에 6.25 참전용사들을 호텔로 초청해서 같이 식사도 하고 선물도 전달하며 그곳에서의 공식일정을 마쳤고 식사 후에는 우리 대사관저에 들려 대사 내외와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는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본국에서 오는 공관 운영비가 수시로 늦어져 늘 걱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며 그곳에서의 생활이나 그 나라 정부에 관한 현실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우리가 호텔로 돌아갈 즈음 독일분인 대사 부인께서 우리에게 꽤 커다란 커피 원두 자루를 하나씩 선물로 주셨는데 우아한 한복 차림으로 우리를 맞은 대사 부인은 한국말도 능통했다. 선물로 받은 커피를 들고 왔지만 이미 내 가방 안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이 꽉 차 있는 상태라 생각 끝에 다음날 호텔 청소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말았는데 대사 부인의 성의를 버린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고 찜찜한 마음이 한구석에 남아있다. 에메랄드 보석과 커피로 유명한 나라인데 지금 까지도 늘 마약과의 전쟁으로 조용한 날이 없는가 보다. 보고타를 떠나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하니 얼마 전 故人 되신 박만복 선배가 호텔로 날 만나러 오셨다. 전에 배구 관계일로 서울에 오셨을 때 잠시 만나 뵌 후 내가 남미 여행을 가게 됐다는 연락을 미리 드렸더니 오신 거다. 고등학교 한참 선배이신 박만복 감독은 88 서울 올림픽 때 페루 여자배구 감독으로 은메달을 획득 이미 페루의 유명인사가 되어있을 때였다. 그날 저녁 선배님은 나를 미라플로레스 해변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마시며 지난 얘기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자동차들이 창문도 없이 무늬도 없는 타이어를 달고 다니는 게 흔히 보이던 수도 리마의 거리 풍경이었는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근래 텔레비전에서 본 리마는 굉장히 세련된 도시로 변화되어 있었다. 88 올림픽 후 그 나라 대통령이 좋은 자동차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웃으시던 박만복 선배는 斗酒不辭 술을 무척 좋아하셨던 분이었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지난 기억을 잘못하시는 걸 보며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신 게 너무 안타까웠다. 선배님 덕분에 페루 여자 국가대표 배구 팀원들과 기념촬영도 하며 보낸 지난 리마 에서의 기억이 나는 아직 생생하게 남아 선배님과의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페루에서 6일을 보내는 동안 잉카문명 이전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졌다는 나스카 라인을 보러 갔다. 만든 목적은 분명치 않으나 경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원숭이나 벌새 그림과 외계인 문양은 누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만든 건지 흥미로운 여행이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는 이 우주공간에는 분명히 지구인보다 뛰어난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전에 별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신 故조경철 박사님이 생각났다. 회사 차원에서 조박사님을 지원하라는 회장님 지시가 있어 조박사님을 만나게 됐는데 호탕한 웃음에 늘 미소를 간직한 애주가 셨다. 한 번은 조박사님과 함께 지방대학에 갔을때 강연을 끝내신 후 점심 먹고 가자고 하시길래 따라나섰는데 정육점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거기서 고기와 소주를 시키셨다. 정육점 한편에 테이블이 몇 개 놓여있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작은 정육식당 같은 곳이었는데 대낮에 거기서 소주 각 한 병씩을 나눈 후 서울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별명이 아폴로 이신 조박사님도 고향이 이북 이셨는데 어느새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나 보다. 박사님 권유로 UFO모임에도 나간 적이 있는데 천문학 박사이신 고인은 아마 본인의 이름을 가진 별에서 즐겁게 한잔 하시며 지내시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나는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 쿠스코로 향했다. 배꼽 이란 뜻의 쿠스코는 3400m 고도 위에 위치해 있어 희박한 공기 때문인지 호텔 방마다 산소 호흡기가 비치되어 있었고 절대 뛰어다니지 말라는 주의도 있었다. 괜찮은 호텔이었는데도 물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샤워는커녕 세수나 겨우 할 정도 여서 피로도 풀 수 없는 힘든 여정이었다. 감탄할만한 건축물등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날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새벽에 역으로 나가보니 컴컴한 역사 안에는 이미 많은 현지 사람들이 전날부터 그곳에서 밤을 새웠는지 추위에 만토를 둘러쓰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화면에서본 6.25 당시 피난민 모습들과 같다는 생각에 가슴 찡한 느낌이들었다. 관광객들만 타는 작은 협괘 열차를 타고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는 피곤함 때문인지 기대만큼의 크나큰 감동은 없었지만 우리가 내려오는 도중 우리와 같이 출발한 소년들이 구비마다 산길을 가로질러 먼저 내려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우리에게 더한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해주었다.에스파냐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멸망한 잉카의땅 페루는 엘콘도르 파사 의 고향으로 라마와 알파카가 살고 있었고 묘한 한약 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체취 속에 안타까운 전설만이 남아있었다. 짧은 일정 탓에 서두르다 보니 제대로 눈에 담지 못 한 것들이 많다는 걸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어 너무도 아쉬운 마음이다. 리마로 돌아온 후 선배님이 가는 길에 안주하라고 싸주신 엄청 큰 마른오징어와 고추장을 싸들고 다음 행선지인 이과수로 향했다. 호텔 도착 후 혼자 폭포를 보려고 가는데 사람도 뜸한 길에서 뱀 조심 팻말에 놀라 쫄깃해진 심장을 안고 정신없이 뛰었는데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과수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는 장엄하다 해야 하나 하여간 세상을 삼켜버릴 듯이 어마어마한 황톳빛 물폭탄을 쏟아내는 그 광경에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라운 광경 이었으며 단연 세계 최고의 폭포였다.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자리한 이과수 폭포는 영화 미션에서 오보에로 Nella Fantasia를 연주 하는 장면을 촬영한곳으로도 알려진곳으로 그음악 또한 오랜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고 있다. 다음날은 상파울루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기상악화로 예정에 없던 하루를 더머믈게 되어 마음이 심란한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준 일본 여성 가이드를 생각하면 그 고마운 마음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음날에야 우리는 상파울루와 리우 그리고 멕시코 시티를 거쳐 미국 LA에 도착하니 일정의 차질로 인해 겪었던 말 못 할 고생 때문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며 몸살끼가 찾아왔다. 잘 알아들을 수도 없게 우왕 우왕 거리는 공항 안내방송에 늘 출발시간이 늦어 떠나야 떠나는가 보다 하는 지루한 기다림 등 모든 게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상파울루 나 리우 그리고 멕시코 시티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있긴 했지만 모든게 방전되가는 상태라 즐길여유도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점점 지쳐가는듯 하다. 어느 나라든 밤문화가 즐겁고아름다운 건데 늦은 밤에는 노상강도들 때문에 신호등도 무시한 채 달린다는 그곳 사람의 겁주는 말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브라질을 떠났지만 그나마 멕시코 시티 가리발디 광장 카페에서 마리아치 연주가 여행의 리스크를 상쇄시켜주며 나에게 잠시나마즐거움을 주었던 그 시간은 좋았다. 잉카. 마야 아즈텍 등 수많은 남아메리카 문명은 유럽 열강들의 땅따먹기에 농락당해 이제는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들의 슬프고 아픈 역사는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와인으로는 많은 대면을 했지만 파타고니아가 있는 칠레나 아르헨티나 수도를 아직 가보지는 못했으나 지금으로서는 갈엄두도 나질 않아 그들의 와인과 함께 화면으로나 즐겨본다. 스페니쉬 기타의 음률 속에서 강렬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플라멩고를 춤추는무희의 슬픈표정 그리고 탱고의 선율에 몸을 맡긴 남녀의 실루엣 그 모습을 그리며 그곳의 와인과 입을 맞춘다. Te qui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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