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라고 쓰인 결혼서약서에는 유효기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할 때 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서약을 해놓고 혼인신고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법원을 찾는 사람들을 점점 많이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황혼이혼이 10년 전의 두배나 되는 전체 이혼율의 33%나 차지한다는 사실에 놀라우면서도 나는 남들만의 일인 양 못 들은 척하며 지낸다. 그나마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며 친구들과 통화하는 마누라 목소리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결혼은 감소하고 이혼은 늘고 있는 추세라는데 거기다 졸혼이니 휴혼이니 하는 말들도 유행처럼 번진다. 그러니 혼자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랑보다는 이별의 충격이 훨씬 강하며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많이 받는다고 그런다. 어느 날 의류회사를 하는 친구가 자기네 회사 전무로 있는 사람이 곤경에 빠졌는데 같이 만나 얘기 좀 들어 봐줄 수 없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 어느 날 자기 와이프가 사라졌는데 대학시절 남자 친구와 해외로 간 것 같다고 했다. 좀 늦은 결혼을 해서 부인이 10년 연하라는 그 친구의 말에 안타까운 동지애를 느끼며 부인을 찾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물었더니 사랑하기에 모든 걸 잊고 아이들과 잘살려고 한다는 말에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간 상황을 정리해보니 카드로 쿠알라룸푸르 비행기표를 끊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 항공사 지점장으로 나가 있는 친구에게 사진 등 신상 정보를 보내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갈만한 한식당 같은데 도움 좀 청해보라고 부탁했더니 한 달쯤 인가 후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아 알려줬더니 바로 가서 부인을 데려 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정말 도와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 친구와의 통화에서 그 양반 잘 지내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다시 집을 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씁쓸하고 허탈한 마음만 들었다. 그럴 거면 대학 친구와 결혼 하지 왜 지금의 남편에게 상처를 남긴 건지 원망 섞인 생각도 들었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질 않는다 했듯이 같이 떠난 그 남자가 첫사랑이었나 보다. 배우 김지미와 최무룡이 헤어질 때 했던'사랑하기에 헤어진다'라는 아리송한 말을 이해하려 했지만 사랑은 움직이는 거란 표현이 가슴에 더 와닿는 게 사실이다. 대학시절 음악으로 이름을 날렸던 후배가 하나가 그야말로 좋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엄친아 들인 동생들과는 달리 공부는 안 하고 노는 것만 좋아해 아버지에게 찍힌 친구가 있었다. 노래 좋아하고 낭만이 가득한 그 친구는 외국항공사에 근무하다 적응을 못하고 퇴직 후 여행사와 이태리 식당을 겸업하며 즐겁게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술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와서 오랜만에 만나러 갔더니 한잔 하는 도중 이 친구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형! 와이프가 집을 나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는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처갓집 등 여러 군데 수소문해봐도 다들 모른다고만 한다며 답답한 마음에 형과 술 한잔 하고 싶었다는 후배 말에 놀라움과 장대비를 맞는 기분으로 한동안 술잔만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지난날 내게 어울리는 노래라며 '새벽기차'를 가르쳐준 후배 인데 그날 눈물바람 날리며 기타를 부여잡고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측은하기도 하고 지질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사이 확 늙고 초췌해진 것 같은 후배를 바라보며 뭐라고 위로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얼마 후 어떻게 구했는지는 몰라도 와이프가 이웃집 남자와 이태리 아나카프리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와이프가 그리운 눈치였지만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 큰 아들 둘까지 둔 여자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남녀 관계는 정말 알 수 없는 요지경 같은 세상이었다. 그 후 아주 어린 여자를 만나 내가 일하던 태국 골프장에도 부부가 놀러 왔었고 내가 LA에 있을 때는 미국서 살려고 한다며 나를 만나고 간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는 있는지 늘 궁금하고 마음 쓰이는 후배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별 여행에 파티까지 하며 헤어지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저렇게 헤어질 거라면 결혼의 안식년과 같은 졸혼이나 휴혼도 더욱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혼을 흥미 삼아 부채질하는 매스컴이 더 가관이다. 일본서 배운 짓거리 인지는 몰라도 오직 예능에만 목숨을 걸고 찌라시만 난무하는 파파라치 같은 매스컴의 행태에 미래가 우려스럽다. 과연 누가 말하는 상식과 공정의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뀔 수는 있을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에 있을 때 보면 전에는 우리보다 이혼이 더 많았는지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가 한인 신문 광고란을 도배하고 있었다. 힘든 미국 생활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헤어진 남편이 휴대폰으로 보낸 김범수의 약속 이란 노래를 들으며 눈물짓던 여자의 모습을 보던 나는 알 수 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결혼 이란 긴 항해 속에서 같은 파도는 하나도 없었고 가슴속 깊이 묻혀 있는 사랑은 삭았을지도 모르지만 애틋한 마음으로 내게 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 와서 내게 집을 나가라는 마누라 폭언에 누가 중이고 누가 절인 지 따져봐야 알겠지만 마누라에게 'Old soldier never die. just fade away '라는 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