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의 초라한 모습

취경전

by 구일권

80년도 중반인가 하와이에 갔을 때 그곳 회사 사람이 캐딜락 리무진을 몰고 나를 마중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롤스로이스 나 이태리 명차들 빼놓고는 벤츠나 캐딜락이 최고라 생각했던 때다. 대학 때 가끔 총장님이 타고 지나가는 미국 세단 Buick만 봐도 가슴 설레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60~70년대만 해도 콜뱃 이나 머스탱 등 멋있고 힘 좋은 미국차들이 많았고 힘의 상징인 군용 GMC 같은 트럭을 생산하던 미국이었는데 어떻게 그 옛 명성이 사라진 건지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요트나 캠핑카 트레일러를 뒤에 달고 힘차게 달리는 힘 좋은 차들을 볼 때면 아직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저력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차나 유럽차들에 밀려 한동안 주춤거리던 미국차들이 이젠 전기차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걸 보며 역시 세월이 약이며 세상은 돌고 돈다 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전에 신형 콜뱃을 타본 적 있는데 떨림이 얼마나 큰지 안마의자에 앉은 기분이었고 터보 엔진을 달은 험비나 체로키 Jeep을 타면 전장으로 나가는 기분이었는데 그런 차들의 문제는 기름 먹는 하마 같기에 미국이라면 몰라도 기름값이 비싼 한국서 타고 다닌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며 누가 거저 차를 준다 해도 차를 세워 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서 장거리를 갈 때는 렌터카 회사에서 기름도 적게 들고 고장 확률이 낮은 소나타나 캠리를 빌려 떠났는데 몇 시간씩 달려야 주유소가 보이는 허허벌판에서 고장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에 가면 고급차들은 유럽차들이고 일반차량은 대부분 일본차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어느 정도 우리 차들이 그 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미국차들은 Jeep 종류 아니면 일반 승용차는 눈씾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으니 정말 경쟁력을 상실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래전 국내 자동차 업체 공장 실무자들 40여 명과 함께 일본 자동차 업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일본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방문 허가를 받아 갔는데 간 사람들의 불성실한 견학 태도에 민망하고 열 받아 결국 본사에 연락해 바로잡긴 했지만 그런 태도나 마음가짐이 아직도 일본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라 생각했다. 당시 토요다. 혼다. 닛싼은 설비공정을 오픈시켰지만 마츠다나 미츠비시 등은 우리와 비슷했던 수준이었는지 일부분만 공개했다. 우리를 위해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공장 내부를 안내했고 도시락까지 준비 해준 그들의 성의 있는 사전 준비를 보며 우리도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만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 정도는 다 안다는 식으로 보지도 않고 밖에서 뒷짐 지고 담배나 피워대는 방문자들의 몰상식한 태도는 우리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세계 각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아름답고 획기적인 디자인의 자동차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우리 현실에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그런 차들은 따라갈 수 없더라도 쪼그만 경차 지만 눈에 쏙 들어오는 이태리의 친퀘첸토 같은 차가 우리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며 단종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딱 정 벌래 같은 디자인으로 100여 년을 우려먹은 폴크스바겐의 비틀 같은 차를 만들었으면 하는 거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서민들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수입명차들이 많이 굴러 다니긴 하는데 수시로 사고소식만 들려오니 부유한 집안 아이들의 장난감 같아 보일뿐 별로 달려볼 곳도 없을 것 같은 복잡한 도심에서 소리만 질러대는 명차들은 돈 자랑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홍콩 스탠리 베이에서 보았던 명차들의 질주나 넓은 대륙에서 지축을 진동하며 달리는 할리데이비슨 투어 행렬의 불빛 같은 것은 아름답고 멋스러웠는데 좁은 땅덩어리에서 새장 속에 갇힌 듯 지내는 명차 마니아들은 변죽만 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 했던가 말로는 3만 불 시대라는데 삶의질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서민들의 생활이며 자원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 말만 앞세우는 정부를 믿고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불안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 자동차 회사들도 작지만 성능 좋은 차들을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하여 큰 차를 선호하는 우리 국민들이 근검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보릿고개 나 IMF 같은 황당한 위기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치인들은 늘 얘기하는데 국민들도 그 권력을 남용 해볼수 있는 날이 올수나 있을 런지는 의문이다. 죽을 때나 타볼 수 있다는 캐딜락이었는데 허우대만 멀쩡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초라해 보이는 걸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옛날의 그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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