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과 지루한 일상

취경전

by 구일권

손자들을 만나러 홍콩을 다녀온지도 어느새 2년 가까이 돼가는 걸 보니 여행의 동반자인 가방들도 아주 푹 쉬고 있는 중이다. 나를 거쳐간 여러 개의 가방들 중 수명을 10년 넘긴 가방은 한 개정도뿐이고 나머지는 지퍼가 고장 나거나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여행 중 애를 먹게 만들어 단명으로 끝난 것들도 두세 개 있었다. 고쳐 쓸까도 생각했지만 수리비용을 보태 새로 구입하는 편이 났겠다는 생각에 한번 고장 난 가방은 가차 없이 버렸다. 또한 오래전에 비싸게 구입한 가방들은 튼튼하긴 한데 무겁기도 하고 바퀴가 두 개만 달려 불편해 사용은 안 하지만 버리기도 아까워 잡동사니나 넣어두는 골동품으로 창고에 모셔져 있다. 물론 멋있고 좋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좋겠지만 나는 어느 곳을 가느냐에 따라 가방을 선택하게 된다. 오래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한 작은 비행기에서 가방들을 활주로 아래로 마구 집어던지면 그걸 리어카에 주워 담아 싣고 가는 그런 장면을 목격한 뒤로는 멋있는 가방보다는 튼튼하고 실용적인 가방을 선택했다. 또 홍콩 아들 집에 갈 때는 들지도 못할 정도로 먹을거리만 가득 채우는 마누라 때문에 소위 말하는 헝겊으로 된 이민 가방을 선호한다. 공항에서 늘 중량 초과 요금을 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퀴가 부러지게 잔뜩 싸들고 가는 바람에 나의 허리는 늘 뻐근하다. 유럽 여행 중에는 대부분 도시가 옛날 로마 군사들이 지나가며 만들었다는 돌로 만든 울퉁불퉁한 도로 이기 때문에 좀 먼 곳까지 가방을 끌고 다니려면 눈에 잘 띄고 튼튼한 바퀴가 달린 가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장기간 여행을 다닐 때 가방 속에 꼭 챙겨 가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튜브로 된 고추장과 일회용 일본된장 그리고 깻잎 통조림과 컵라면 몇 개 들이다. 물론 어느 곳이나 한국 식당은 있지만 굳이 그곳까지 찾아갈 정도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면 몰라도 현지 음식들이 느끼하다 싶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며 어느 도시던 구석구석에 까지 보이는 중국식당에 가서 음식에 고추장이나 깻잎을 곁들여 먹으면 정말 여행 중 쌓인 피로가 풀리는 만족할만한 나의 경험들이다. 요즈음은 카톡으로 며느리가 보내주는 손주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긴 한데 영상통화를 너무 자주 해서인지 평소에는 시큰둥한 녀석들이 선물이나 보내주면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좋아하는 모습은 코로나로 인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여기도 그렇지만 덥고 좁은 홍콩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는데 다행히도 아들이 재택근무를 할 적이 많아 집 근처 바닷가나 년간 회원권이 있는 디즈니랜드를 수시로 가는 것 같았다. 디즈니랜드에 사람들도 별로 없어 이것저것 즐길 것도 많을 텐데도 아이들은 하도 많이 다녀 흥미를 잃었는지 사진에서 보는 손주 녀석들의 표정은 그리 즐거워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요즘은 학교 수업이 시작되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며 코로나가 뭔지 참 많은걸 잃게 만들었다. 펜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든 걸 지켜가며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모이지 말라는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 미꾸라지 같은 인간들을 볼 때면 우리도 홍콩처럼 몇 개 구역을 완전히 묶어 통제해버리는 그런 강력한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자유방임만이 민주주의가 아님을 깨우쳐줄 그런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인데 북한 김정은 이도 남한의 중2가 무서워 남침을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떠돌 정도로 못된 것만 배워 겁이 없는 아이들인데도 인성교육에 책임 있는 부모나 학교는 책임감도 없이 몸만 사리며 방관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 다시 일률적으로 빡빡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히고 싶은 꼰대의 생각이다. 배고팠지만 순수했던 시절의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수 있길 바라면서 새벽이 오기 바로 전이 제일 어둡다 했으니 지루하지만 좀더 참고 잘 버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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