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그러면 한국에서 가는 여행자들은 보통 올림픽 타운 주변의 웨스턴, 후버, 윌셔, 피코 등에 둘러싸인 한국인 거주지'코리아타운을 생각한다. 사실 LA라고 불리는 지역은 북에서 남쪽 경계까지 자동차로도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한인교포들은 북쪽의 썬 밸리 근처부터 남쪽의 오렌지 카운티의 가든 글로브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 도시까지 폭넓게 흩어져 살고 있다. 그중 내가 있던 어바인은 학군이 좋아 한국 엄마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고 했으며 또한 어바인에서 20분 정도만 나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고 가는 도중 맛있는 레스토랑들과 많은 명품 가게들이 즐비한 Costa Mesa를 지나게 된다. 내가 살던 어바인의 제프리라는 동네는 딸기밭도 있고 모든 게 편리한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동네였다. 허지만 이렇게 겉으로만 보이는 LA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는 달리 코리아타운은 말 그대로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며 그곳이 바로 LA이다. 1980년대 진출한 자바( Jobber)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LA의 남대문 시장 같은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코리아타운을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묻어나는 그곳이 LA 한인들이 살아 숨 쉬는 장소였다. 뉴욕은 차가 없어도 지하철 등 교통편이 잘돼 있어 다니기에 큰 불편함이 없지만 LA는 차 없이는 다니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지인들과 만나 한잔 하려면 그들이 사는 위치에 따라 코리아 타운이나 가든 그로브에서 만났다. 한 번은 가든 그로브에 있는 중식당에서 모처럼 친구들 넷이 만나 대낮에 한잔 하는데 그곳 주인이 오더니 웃으면서' 낮부터 고량주를 이렇게 많이 드셔도 괜찮냐며 서비스 안주 하나를 내주었다. 이 식당의 손님 대부분은 한국 교민들이었고 주인은 인천에서 학교를 다닌 화교 출신이었다. 거의 2년여 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건배는 오래 계속되었고 결국 대리기사를 부른 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곳 가든 그로브도 큰 한국 마켓은 물론 곱창전골에 염소탕집 등 없는 게 없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곳에서 좀 떨어진 산 위에는'구름이 머무는 곳'이라고 식당과 과수원이 있는 곳인데 여기서는 멕시코에서 냉동으로 들여오는 보신탕도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 과거 LA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파크 부근에 자리하는 코리아타운에는 LA 한인교포 15% 정도가 거주하는데 이곳은 범죄율이 높아 대부분 한국 교민들의 거주지역은 그곳을 벗어나 주변 환경도 좋고 더욱 안전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가 루지애나 피시 마켓이라는 이름의 가게 운영권이 매물로 나왔는데 보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완전 흑인들만 사는 동네였다. 뉴욕 자메이카 에비뉴에 갔을 때 긴장감을 여기서 또 한 번 느끼며 바로 매물로 나온 피시 마켓 가게로 갔다. 그곳은 가게 진열 장안에 있는 생선을 선택하면 바로 생선에 후추, 소금, 옥수수 가루를 바르고 튀김옷을 입혀 쇼트닝(돼지기름 굳힌 것)에 튀겨낸 트랜스 지방이 가득한 생선 튀김이었는데 20달러 정도면 큰 봉투에 하나 가득 담아 주기에 4인 가족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양이었다. 그곳에 유독 손님들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빈곤한 계층에게 정부에서 발급하는 쿠폰을 들고 와 음식을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보기에도 건강에 좋을 리 없는 음식이지만 커다란 봉투에 담아 들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흑인 여성의 뒷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곳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 중 하나가 음식값을 지불하는 방법이 참으로 미국의'슬램' 스러웠다. 손님으로부터 받은 돈은 'ㄱ자와'ㄴ자 모양의 두꺼운 플라스틱 배관을 통해 꺾어 밀어 넣으면 잔돈 또한 마찬 가지 방법으로 받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의 살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가게 주인도 저녁 7시만 되면 직원들에게 영업을 맡기고 먼저 퇴근한다고 했다. 필시 목숨을 내놓고 밤늦게 까지 장사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이처럼 싸한 분위기의 동네에도 늦게까지 일하는 한국인의 자동차 정비 공장이 있었다. 분명 낡은 중고차들뿐인 이 동네에서 장사는 당연히 잘되겠지만 정말 목숨 내놓고 일하는 의지의 한국인 이란 생각을 했다. 오직 캘리포니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IN & OUT 햄버거가 있는 이곳 캘리포니아 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셀 수 없이 많지만 난 그중에서'헌팅톤 비치'를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말리부에 있는 'moon shadow'달빛 레스토랑과 샌디에이고 가는 길에 있는 'Dana Point'절벽 위에 있는 Canon(캐논) 이란 레스토랑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장소 이기도 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뜻밖의 여정이라는 프로에서 윤여정과 이서진이 찾아간 레돈도 비치의 게요리 하는 집은 한국에서 관광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리는 곳이기도 한데 한국의 게처럼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은 없지만 그냥 소문 때문에 들려 보는 듯한 곳이었다. 그리고 1번 도로나 66번 도로 등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장소들이 많은데 팜스프링의 온천이나 모롱고의 쇼핑몰과 카지노 그리고 샌타바버라 가는 길에 있는 'Oxnard'(옥스나드) 쇼핑몰 등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한 번은 LA 근교 Industry Hill Golf Club(인더스트리 힐 골프 클럽)에서 초청받아 간 적이 있는데 아이젠하워(미국 34대 대통령) 코스가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골프장이며 산 위에 자리 잡은 클럽 하우스에서는 LA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유명한 골프장이었다. 오후 5시경 라운딩을 끝내고 친구와 나는 저녁 먹으러 LA 시내로 나가기 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콜택시를 불러 LA로 돌아오는 도중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프리웨이에서 좀 큰 접촉 사고가 났다. 다행히 우리는 다친 데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마치 영화에서 자주 보던 충돌사고 후 벌어지는 그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 경찰차는 사고 장소 주변에 많은 불꽃막대를 세우고 나더니 뒤이어 엠블런스와 소방차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몰려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들은 우리가 다친 곳은 없는지 혈압까지 재가며 구석구석 확인하더니 옆이 정말 많이 찌그러진 우리 차와 상대방 차를 견인해 갔다. 콜택시를 운전하던 분이 경찰이 우리에게 관계를 물으면 "한국에서 온 친척으로 함께 관광 왔다고 말해달라 부탁했다. 무허가 콜택시 업체 같았지만 미국 생활을 조금 이나마 이해하기에 기사분이 더는 신경 쓰지 않도록 안심시켰다. 운전기사 말대로 나는 우리에게 온 여자 경찰에게 사고 경위를 묻는 대로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몸에 짝 달라붙는 카키색 제복을 입은 금발의 글래머러스한 미인인 여자 경찰을 친구와 나는 진술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고 그녀가 사이드카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우린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 후 다른 차편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뭐에 홀렸던 것처럼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80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생겨난 미국의 4대 상업은행중 하나인 Wells Fargo 도보이고 베버리힐스와 할리우드가 있는 이곳은 어느 주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늦은 봄까지 눈이 쌓인 산아래로 수많은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돌고 있고 수많은 골프장과 쇼핑몰 그리고 관광 명소가 있는 이곳은 세계의 관광객들이 늘 붐비는 곳이다. 생각해 보면 분명 척박한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겐 낙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사는 우리 교민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여러 분야에서 고군분투했던 일 세대, 미나리 영화에 나오는 그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이제야 그 후손들이 하나둘씩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92년 4월 로드니 킹 사건으로 발단이 된 LA 폭동은 교민들에게 큰 좌절과 상실감을 주었지만 한국인의 강인한 의지와 단결로 다시 옛 모습을 찾은 것이 LA의 지금 모습이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올림픽 타운에 맥도널드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한국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혹 인력 시장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현지 정착이나 사는데 따른 여러 가지 문제를 상담해 주는 이른바 "종합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각종 법률 상담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하여간 전문 상담사들이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나름대로 해결책을 얻어 가는지 항상 그곳은 한국인들로 붐볐다. 코리아 타운 내 한국 백화점 지하는 노인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고 마치 어느 한국 지방 소도시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코리아 타운의 풍경이다. 있을 건 다 있지만 치과치료나 몸이 아파도 치료비 때문에 한국에 와서 치료받는 우리 교민들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면 무엇을 기대하며 그곳을 찾아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린 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말하자면 LA는 이글스의 캘리포니아 드림 전주의 강렬한 트럼펫 소리처럼 나에게는 꿈과 사랑 그리고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원컨대 모든 이들의 '아메리칸드림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며 LA 어느 해변 피어에서 낚시하던 한국 해병대 복장의 한 늙은 해병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오라가'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 영원한 한국인인 것처럼.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는 LA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