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베이글
요즘은 나는 너무 살맛이 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를 소홀히 하긴 하지만 내 꿈을 찾아서 글을 열심히 쓰고 있다.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최근에 했는데 나에게서 그런 긍정 에너지와 차원 다른 비전, 진정성이 느껴지고 사람이 멋있고 빛나는 것 같다고 해주었다. 과찬이다.
어찌됐든 나는 이런 상태인 반면 주변에서는 현실에 치여 괴로워하는 친구들 역시 꽤 존재한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사람들이 왜 삶을 포기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외국 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그래도 나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고 고마워한다.
오히려 나도 그런 상황에 대해 고민해보고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에 고맙다.
과로사도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급이 없는 현대사회는 자본이 곧 힘이자 사실상의 계급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대기업에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기도 하지만 부품의 느낌,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노예 취급을 한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특정 회사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뉴스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떠오르는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진 소수만 행복하고 다수는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답답하고 마음이 좋지 않다. 가장 위험한 마음가짐은 " 나만 아니면 돼" 일 것이고 단순히 외면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방관이다.
나의 인생은 그런 삶과는 거리가 있다. 공장 일용직, 족발집 주방, 중국집 홀서빙, 수학 학원 조교, 에어컨 수리 보조기사 등 여러 알바를 20대 초반에 하긴 했지만 돈을 번다기 보다는 사회경험을 쌓으려는 이유에서 한 것들이었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이 괜찮으면 일하는게 나름 재밌었지만 악덕 사장을 만나면 알바가 가기 너무 싫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악몽을 꿀 정도였으니.
어쨌든 이를 제외하면 나는 사실 알바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일산에서 자랐지만 등록금이 1년에 500이 넘어가는 기독교 사립 초,중학교를 나왔고 내 친구들 역시 그런 곳에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니 나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았다. 그 안에서도 과중(과학중점반)이라는 학급에 들어가 다시 나와 유사한 친구들과 재밌게 학교를 다녔다. 재수는 강남대성에서 했고 홍대를 다니며 현재 왕십리에 거주 중이다. 미래 직장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거나 판교로 갈 계획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삶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다. 좋은 환경과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살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함을 가진다.
이런 나와 사회적 약자들, 자본이 없는 자들과는 사실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세상의 빚',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명감' 때문인지 마음이 쓰인다. 나는 내 인생의 목표가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다. 멋있는 예술가로 사는 것이 가장 근접한 답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반에서 약하고 아픔이 있는 친구들이 소외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졸업한 뒤에 듣게 되었다. 당시에는 다른 반이어서 전혀 몰랐지만 역시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과 같았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일을 최대한 방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나 하나 잘먹고 잘살겠다고 아등바등 사는 것은 멋이 없다. 계속 살아가면서 이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