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여행기(알파인 마운트쿡 연어, 마운트 쿡, 후커밸리)
‘히터,, 너는 최고다’
전날 추위에 벌벌 떨며 잤던 나는 히터를 꺼낼 생각을 못했을까 과연?
사실 했었다. 차 문을 열고 살짝 침대를 위로 올려 히터를 꺼냈으면 되는데 단순히 그게 귀찮아서 나는 그냥 이불 한 채를 더 내리는 것으로 잠을 청했다.
이 조그마한 전기 히터가 따뜻해봤자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어주겠냐만은, 이 작은 캠핑카 한대를 달구기에는 적당한 것 같았다.
고맙다. 너의 노고에 칭찬의 박수를 보내진 않는다. 왜냐면 널 위해 돈을 추가로 지불했었으니까.
대신 멍청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x신아.
‘절경 -> 재앙 ->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절망 -> 절경 again’
엄청난 뷰의 테카포 호수 앞에 앉아 시리얼을 야무지게 말아먹은 나는 어디로 갈지 정하기로 했는데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들린다는 푸카키 호수 근처 연어 집으로 일단 출발했다. (꼭 가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는 동선이어서 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불안하게도 저 앞의 전광판에는 ‘fog가 껴있으니 운전 조심해 ‘라고 적혀있었는데(물론 영어로)
심해봤자 한국 정도라고 생각했었지만, 거기는 경기도 오산이었다.
안개는 마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혹은 소서리스가 마나 무한처럼 써재끼는 블리자드 안에서 운전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졸아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60km/h로 달리고 있었지만 이 미 x 키위 놈들은 80~100이든 그냥 달려서 나에게 똥침을 놓더라
피해 주고 피해 주고 또, 피해 주고 방어 운전하며 천천히 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어떤 도로 위에 누워있는 차량을 에워싸고 있었다.
애도의 성호를 긋고 다시 한번 안전운전을 다짐했다.
알파인 쿡 연어샵에서 푸카키 호수는 정말 내 미래만큼이나 보이지 않았는데, 그냥 정말 연어만 먹고 오게 되었다 풍경이든 나발이든 진짜 한 치 앞도 안보였을 정도다.
진실이다 사진 첨부한다. 맞지? 그럼에도 나는 다른 한국인들과 다르기 위해 연어를 그냥 혹은 초장을 사서 먹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베이글과 크륌치즈를 가지고 가서
생연어 크림치즈 베이글을 만들어먹었는데 맛은 따로 먹든 같이 먹든 똑같은 것 같았다.
‘잊히지 못할 최고의 코스’
다음 코스로 잡은 후커밸리 하이킹을 하기로 마음 먹은 뒤, 출발하는데 역시 이런 안개 아래면,, 그냥 들리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겠다 하고 도로를 따라 목적지로 출발했는데,
갑자기 어느 한 기점을 중심으로 전체의 안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진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물론 울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것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마치 각 자동차 브랜드의 cf에나 나올 것 같은 풍경들과, 스톡 이미지(*브랜드 별, 상품 이미지 같은?? 그런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쉽다)에 쓰일 법한 환경들이 약 1시간 동안
펼쳐졌는데,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묻힌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을지도?‘
아직 죽고 싶진 않다. 다만, 만약 여기 묻어준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 죽을 의향도 약간은 있을 것 같다.
차를 대고 출발한 후커밸리 하이킹은 이게 말이 될까 싶은 정도의 장관 아래 걷고 또 걸었는데, 내가 살던 곳과 살았던 곳과 살아가게 될 곳들이 너무도 초라하게 만드는 그림들이 지속적으로 펼쳐졌다. 그곳을 걷고 있으니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의미는 없지만 조금은 시원해지라고 만년설과 빙하 그리고 시원하게 흐르는 빙하 계곡들을
실시간으로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는데, 어느덧 내 인스타 스토리는 자연 > 자연 > 또 자연 > 그리고 대 자연과 같이 끊임없이 배경만 보여주고 있었고 너무 휴가를 자랑하나 싶어
잠깐 찔리기도하였는데, 이 절경들에 대해서는 비디오나 사진들로 많이 찍었는데, 여기는 한정되어 있는 공간이니 한 장만 보여주겠다.
마지막 도착 지점에 닿기 위해 총 세 개의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다리를 하나 건널 때마다 챕터가 나뉘는 느낌으로 그림이 달라졌는데 1번 다리는 드 넓은 들판에
나무 내비게이터가 있는 느낌이라면, 2번 다리는 하이킹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3번 다리는 사실 잘 기억 안 난다. 이유는 그 쯤 지나갈때, 새로 산
등산화가 발이 좀 아팠던 것 같으니까.. 그렇게 제일 마지막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나는 만년설과 빙하들로 이루어진 호수를 쳐다보고 손을 담궈보니까..도착하면 들어가야지!
안되면 발이라도 담궈야지 했던 내 오만과 객기를 반성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지만, 부탁하여 한 장 남기게 되었다. 보여줄 수는 없으니 나만 보겠다. 눈은 소중하시니까.
‘예술과 함께면 나도야 예술’
후커밸리의 수만 가지 절경들은 다 인상 깊었지만, 하나 바로 중간 지점쯤? 두 번째 다리를 건너고 있는 화장실 하나가 너무나 기억에 남는다.
저게 과연 화장실일까? 멀리서 볼 때는 약간 해리포터의 해그리드같이 외곽에 사는 사람이 살아갈 것 같은 장소이지만, 가까이 가면 생각보다 찌린내가 나는데, 정말로 아름답다.
건물을 잘 지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 공간에 단순히 위치해서 인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는데, 내 머릿속에는 저 예술과 같은 화장실만 기억이 남는다.
애석하게도.
만약 화장실로 쓰이지 않고, 호텔이었다면? 1박에 천만 원을 받아도 될 정도의 콘셉트 & 위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속물인 것 같다. 판단은 읽는 당신에게 맡기겠다.
오늘의 운전도 좋았으며, 즐거웠으며 눈이 제일 호강했으나 지금 기름이 한 칸 밖에 남지 않았다..
뭔가 좀 x 된 것 같긴 한데 다행히도 숙소에서 30km 정도에 주유소가 있긴 있다. x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신. 누가 혼자 있으면 인생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생각들이 많을 거라고 했나?
난 오늘 저녁 뭐 먹지, 아 기름 얼마 남았지, 내일은 뭐 하지, 애들은 일하겠지? 이런 생각밖에 안 한다.
이상
해씨 진화하면 이상해풀이 진화하면 이상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