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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거친 파도를 타고 청산도를 가다

청산도 트레킹

by 맛깔전종만

청산도 슬로길은 청산도 주민들의 마을 간 이동로로 이용되던 길로써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하여 ‘슬로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2010년 전체 11코스 42.195km에 이르는 길이 열렸습니다. (중략)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 공식인증 세계슬로길 1호로 지정되는 등 길이 지닌 아름다움으로 대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라고 완도군 홈페이지에 소개된 슬로길에 대한 설명이다.

해파랑길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청산도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내에게 미안했다.
“지현 씨, 이번 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청산도에 가자고 하네. 옛 동료들이. 다녀와도 될까?”
말을 꺼내고 아내 얼굴을 본다. 아내 표정엔 ‘참 잘도 논다’는 듯한 비아냥과 ‘같이 할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네’라는 긍정이 함께 보였다. 어찌 됐든 아내는 “잘 다녀오세요. 청산도 좋다고 하던데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다음에 같이 가자. 이번엔 답사 삼아 다녀올게”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행은 언제나 좋다. 특히 자연과 함께 걷는 트레킹이 나는 좋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훌쩍 떠난다.

낮 시간에 움직이는 게 아까워 전날 밤 11시쯤 잠을 청해 새벽 1시에 일어났다. 동료들과 2시에 출발하기로 했기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출발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땐 함께 갈 동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어봤는데 받지 않는 분이 있어 살짝 불안했다.
다행히 약속 시간 조금 지나 모두 도착했다. 잠을 거의 못 자 피곤할 텐데도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런저런 추억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약 5시간을 달려 완도항에 도착했다.

밤새 달려온 탓인지 배가 고팠다. 배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인근 식당에 들어가 전복이 들어간 탕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차량 선적이 한창이었다. 여객선은 차를 먼저 싣고 사람이 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주차해둔 내 차를 실어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탑승 관리 직원들이 꽤 화가 나 있었다.
“전화를 세 번이나 했는데 왜 안 받으세요?”라는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여행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사과하고 배에 올랐다.

완도는 세 번째, 청산도는 두 번째 방문이다. 전 구간 42.195km 중 이번엔 약 25km 정도만 걸었다.
뚜벅이(걷기 동호회)들과 함께 여행할 때는 걷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보통 전 구간을 걷게 되는데, 이번 여행 동반자들은 걷는 것보다는 차량을 이용해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어서 다 걷지는 못했다.

바다와 인근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길 내내 기분이 좋았다. 큰금계국, 꽃양귀비, 인동초꽃이 만발해 있었고, 논에는 모내기를 마친 벼들이 자라고 있었다. 청보리로 유명한 청산도의 6월은 노랗게 변한 보리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추수를 마치고 벼를 심었고, 아직 보리를 베지 않은 곳도 군데군데 있었다.

우리는 1993년 임권택 감독, 오정해 배우가 출연한 영화 서편제 촬영지, 그리고 봄의 왈츠, 피노키오, 2024년 방영된 드라마 정년이의 촬영지도 둘러보았다.
퇴직 후 완도읍에서 고향살이를 시작한 동료에게 안부 전화를 했더니 반갑다며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완도읍 완도항에서 청산항까지 배로 50분 정도 걸린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는데도 기꺼이 찾아와 준(완도항에서 청산항까지 배로 50분정도 걸린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 동료는 지금 완도군의 여러 섬을 돌며 어르신들에게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과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고, 완도군을 홍보하는 SNS 서포터즈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17년 방문했을 때 우리 일행을 안내하며 해설까지 해줬던 사진작가분과도 다시 함께했다. 청산도가 너무 아름다워 여행 왔다가 정착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완도의 대표 먹거리인 전복, 소라고동 등 푸짐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청산도 슬로길은 어느 코스를 걸어도 좋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 단풍이 아름다웠던 ‘단풍길’을 다시 걸었다.
초록의 단풍나무를 보며 가을에 다시 물들 단풍길을 상상하며 걸었다. ‘미향길’을 걸을 땐 ‘서편제’의 창 타령이 들리는 듯했고, ‘정년이’의 주인공 운정년 역의 김태리 배우가 노래하던 장면도 떠올랐다.

작은 배의 출렁임, 완도항과 청산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안팎 풍경 또한 일품이었다.
완도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는 동료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청산도는 꽃피는 봄이 제일 좋아요.”

이 말에 나는 다시 만날 청산도의 봄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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