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후크 선장의 토끼풀 농장(1)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간호사들 말로는 그날 이후 낮과 밤 어느 때고 불시에 시계가 ‘따르르릉’ 하고 울렸고, 그때마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의 반응을 살핀다고 했다. 특히 새벽에는 반드시 시계가 울렸고, 이때까지 아버지의 머리맡에 엎드려 있던 소년은 후다닥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아버지의 안색부터 살펴본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이제는 합병증으로 생긴 폐렴 증세가 더욱 심해져 환자의 목에서는 끊임없이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시계소리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소년의 표정도 점차 어두워져 갔다.
― 선생님, 아무래도 시계소리가 작아서 아빠가 듣지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애처로운 마음에 소년의 말에 수긍했다.
― 선생님, 죄송하지만 시계가 몇 개 더 있으면…….
― 그래, 알았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다시 그 민속주점을 찾아갔다. 나는 주인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고 시계값에 해당하는 돈을 보증금으로 맡기고 작동이 되는 시계 다섯 개를 또 가져왔다. 간호사들 말로는 소년은 그 시계를 한꺼번에 울리기도 하고 연속으로 계속 울리기도 하면서 아버지의 반응을 살핀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악화 일로였다.
― 선생님, 더 많은 시계가 있어야 후크 선장이 깨어날 건가 봐요.
나는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년의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그 민속주점으로 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이상하게 여기던 주점 주인도 소년의 마음을 헤아렸던지 더 이상 돈을 받지 않고 협조해 주었다. 나는 진열된 시계 중에서 작동이 되는 시계는 모두 가져왔다. 이제 병실에 있는 시계는 모두 열다섯 개나 되었다.
그날 이후 소년의 생활은 오직 시계에 매달려 있었다. 열다섯 개나 되는 시계의 태엽을 한꺼번에 감아 환자의 머리맡에 모두 모아 놓고 ‘째깍째깍’ 소리가 합창처럼 울리게 하는가 하면, 각 시계가 따르릉따르릉 순차적으로 울리게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따르릉, 하는 알람 소리가 10분도 넘게 계속 울리기도 했다. 소년이 하는 일은 오직 풀린 시계태엽을 돌아가며 감는 일이었다. 병실은 시계의 알람 소리로 요란했고, 그 소리를 듣는 내 가슴도 소년의 눈처럼 안타깝게 젖어 갔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태로 열흘이 지난 목요일 오후였다. 진료실에 있는데 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 박 과장, 퇴근하기 전에 내 방에 좀 들러 주게.
오늘도 같은 문제 때문이겠지, 하는 심드렁한 마음에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야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원장실로 갔다.
― 박 과장, 오랜만에 차나 한잔하려고 불렀네.
내가 들어서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원장은 앉아 있던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 싹싹하게 굴었다. 예상과는 달리 원장의 얼굴은 의외로 밝았다.
― 지난번에는 본의 아니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네. 내가 유독 아끼는 난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게.
평소답지 않았다. 간호사나 다른 아랫사람에게 결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원장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원장이었기에 나는 달라진 원장의 태도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원장의 태도를 간파하지 못해 소파에 앉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 이 사람,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게.
원장이 정수기에서 직접 뜨거운 물을 받아 녹차 티슈를 넣은 종이컵 두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먼저 소파에 앉아 말했다. 나는 원장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원장이 종이컵 하나를 내 앞에 놓으며 말했다.
― 왜, 지난번에 정 씨가 토끼풀 얘기를 하지 않았나?
― 예, 그랬었지요.
나는 원장이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지 종잡을 수 없어 그냥 무덤덤하게 말했다.
― 그때는 그 얘기를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뒤에 곰곰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정 씨가 했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원장의 말은 더욱 아리송했다. 원장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말했다.
― 내가 알아보았는데, 박 과장의 그 환자 말이야. 그 환자가 사는 섬을 토끼섬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섬에는 우리 자생춘란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고 해. 그래서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토끼풀이라고 했다는군.
그 환자와 토끼섬, 그리고 자생춘란(自生春蘭), 이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때까지도 원장이 하는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장이 계속 말했다.
― 박 과장, 왜 얼마 전에 정 씨가 말하지 않았나? 온실 유리를 깬 그 꼬마가 후크 선장 집에 가면 토끼풀이 가득 있다고. 그리고 박 과장의 그 환자가 바로 후크 선장이고, 어때?
원장이 종이컵의 녹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은근하게 권했다.
― 박 과장, 내일모레 토요일에 우리 그 섬에 한번 가보자고. 섬에 있는 그 환자의 집에 한번 가보자는 말일세. 오랜만에 낚시도 하고 머리도 식힐 겸 내 원무과장에게 준비해 두라고 미리 시켜 놓았네. 혹시 아나? 기왕에 받지 못할 병원비인데, 그 환자의 집에 괜찮은 난이라도 있을지? 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촌사람들이 의외로 명품을 키우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니까. 그것이 난인 줄도 모르고 말이야.
결국 원장이 나를 불러 싹싹 댄 것은 받지 못할 병원비 때문이었다. 그 환자가 병원비를 댈 만한 경제력이 없을 것은 뻔하고, 혹시 그 환자의 집에 돈이 될만한 난이라도 있다면 그것이라도 가져와 병원비에 벌충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본업인 병원업무 외에 원장의 비밀지령(?)에 따라 골프장이 나이롱환자나 낚시꾼 벚꽃환자 등에게 골프장 예약이나 낚싯배를 주선해 주는 과외업무로 더 바쁜 원무과장이었다. 원장이 난 절취를 위하여 토끼섬에 가는 특별한 비밀과외업무를 원무과장에게 부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난에 대하여 문외한인 나를 굳이 그 일에 합류시킨 것은 아무도 없는 환자의 집에서 난을 가져와야 할 경우, 담당의사인 나를 끌어들여 절도의 공범으로 삼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원장의 음흉한 의도가 눈에 뻔했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비록 김 과장에게 속아서 그랬던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빈털터리 환자를 VIP실에 들여놓은 것은 결국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아침, 이제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날씨는 쾌청했다. 우리는 병원에서 원무과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토끼섬으로 출발했다. 소년의 어머니를 수소문하거나 병원비 때문에 이미 수차례나 그 섬에 다녀온 적이 있는 원무과장이었다. 병원에서 섬으로 가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해안 마을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선착장 근처 공터에 차를 주차해 두고 막 섬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애초부터 낚시가 주된 목적이 아니었기에 전용 낚싯배를 대절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섬까지는 뱃길로 약 20분 정도가 걸렸다.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낚시꾼 차림의 다른 대여섯 명은 다른 섬에 가려고 하는지 내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토끼섬에 내린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원무과장이 무거운 낚시 장비를 혼자 어깨에 울러 메고 앞장서서 걸으며 길을 안내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오른쪽 넓은 마을길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난 좁은 들길을 따라 모래사장이 보이는 해안을 향해 걸어갔다. 해안 모래사장 근처에까지 와서 마을 쪽을 바라보니 마을 뒤편 언덕 위에 아이들의 섬마을 분교가 보였다.
나는 문득 그 여선생을 생각했다. 후크 선장의 집에서 난을 훔쳐 갈 목적으로 낚시꾼으로 가장하고 섬에 온 우리를 그 여선생이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녀는 펄쩍 뛰며 기절초풍이라도 할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 언덕 위에 있는 저 집이 그 환자의 집입니다.
원무과장이 마을 왼쪽 모래사장 위 언덕 위에 외따로 서 있는 빨간 벽돌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해안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벽돌집 왼편에 검은 차양을 친 창고 같은 비닐하우스 한 동이 보였다.
― 낚시터는 저쪽 갯바위 쪽이 좋습니다.
원무과장이 시선을 돌려 모래사장 왼쪽에서 이어지는 갯바위 해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모래사장 왼쪽 끝에 툭 돌출해 있는, 소년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는 토끼머리 바위가 보였다. 토끼머리 바위에 석부 분재처럼 고고하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년의 아버지가 다친 사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기품 있는 자세로 서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토끼머리 바위섬 입구 해안을 지나쳐 첫 번째 갯바위 절벽 위에 이른 원무과장이 낚시 가방에서 릴 등 낚시 장비를 꺼냈다.
― 원무과장, 먼저 저 집에 한 번 가보지.
애당초 낚시보다는 난을 목적으로 섬에 온 원장이었다. 원장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성화를 부렸다. 우리는 낚시 장비는 그대로 갯바위에 두고 소년의 집으로 갔다. 사고가 난 이후 소년이나 그 어머니도 병원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인지 집은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그곳에 놓인 나무 평상을 덮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집을 빙 둘러싼 낮은 돌담 아래 진열된 분재나 분경 화분의 나무와 초화도 모두 죽어 주인의 무덤이 되어버린 그 화분에도 낯선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 저게 난실인 것 같아.
원장이 마당 왼편의 검은 차양이 쳐진 비닐하우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충 눈짐작으로 4, 50평쯤 될 것 같은 직사각형 비닐하우스였다. 원무과장이 먼저 풀숲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길을 내고, 원장과 내가 뒤따랐다. 사람이 드나드는 미닫이 함석 출입문에 달린 자물쇠는 열린 채 쇠고리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