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스미 갑판장의 음모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내가 약속 장소인 김 과장의 단골 일식집에 갔을 때, 김 과장은 먼저 와서 그 집 여사장과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김 과장은 벌써 반 술이 되어 안경 낀 마른 얼굴에 은근하게 홍조가 올라 있었다.
― 마, 고생시켜서 미안쿠마. 소주나 한잔 받아라.
김 과장이 일부러 지어낸 억지 사투리로 심술을 부리며 놀렸다.
― 야, 그애 어머니 말이야. 휘발유 통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이야?
나는 일부러 무심한 척 김 과장이 따르는 술을 받으며 말했다.
― 왜? 날 못 믿어?
김 과장은 대뜸 정색한 얼굴이 되어 반문하듯 말했다.
― 그런 것은 아니지만…….
― 그럼?
― 아니, 그렇게 맑고 순진한 아이의 어머니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영 믿기지 않아서 말이야.
김 과장이 잔을 들어 쭉 들이키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 너 혹시 그애가 해적놀이 얘기 안 하던?
― 그 얘긴 들었어.
― 어땠어? 감동적이지 않았어? 때 묻지 않은 원초적인 생명 같은 그런 것 말이야.
― 시인이라 표현하는 방법이 좀 다르군. 하긴 사실 나도 좀 그랬어.
의사이면서 꽤 정평이 있는 중앙 문학지에 시인으로 등단까지 한 김 과장을 빗대어 내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내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추궁하듯이 물었다.
― 그리고 그애 아버지가 폭풍우 속에서 아이들을 구했던 얘기도 들었지?
― 그래, 그런데 그 일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야? 하긴 만약 내가 그런 절박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은 들더라.
― 그렇지? 너도 이미 알겠지만, 그 환자, 아니 그애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소생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내가 너에게 보내지 않았을 거야. 정말 내 사비를 들여서라도 살려 보려고 했을 거야. 이제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도 정말 기적이지.
김 과장이 자작으로 소주 한 잔을 다시 마시고는 정색하고 이어 말했다.
―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해적놀이를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라면 어쨌겠어? 천둥 번개가 내려치고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제 아들은 제쳐두고 남의 자식부터 먼저 구했을까? 제 생명을 걸고 말이야. 그런 일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런 점에서 그애의 아버지는 이 시대의 의인이라 할 만해.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고 나라에 신청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어?
그런데 이 사회는 그애 아버지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어. 만일 그애의 아버지가 외딴섬의 보잘것없는 어부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달랐겠지. 그런 의로운 일을 한 사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 사회, 그래서 나라도 관심을 보여주고 싶었어. 내 모든 의학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그 사람을 살려내고 싶었어. 난 정말 그애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불가능이었다.
김 과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안경 너머 김 과장의 눈가에 어른어른 물기가 맺혀 있었다. 김 과장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 그래서 죽음만은 고귀하게 맞게 해주고 싶었다. 어쭙잖은 변명 같지만, 그 죽음의 장소로 내가 선택한 것이 네 병원의 그 알량한 VIP실이었고. 그곳에서 의인의 죽음을 맞게 함으로써 그 병원에 죽치고 앉아 있는 그 속물들과 돈벌레 원장에게 그 사람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애 아버지의 영혼이 그 속물들에게 스며들어 조금이라도 그들의 영혼이 정화되게 말이야. 그애 아버지는 그 VIP실에서 임종을 맞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
의사로서는 드문 시인의 감수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술자리에서 반농담으로 자칭 <21세기 최후의 슈바이처이자 휴머니스트>라고 뽐내기까지 하는 김 과장이었다. 몇 잔 소주와 자기 말에 스스로 도취해 버린 김 과장의 표정이 자못 비장했다.
― 야, 그렇다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않고?
― 그랬다간 그 돈벌레 원장의 개미 일꾼인 네가 그 환자를 받았겠어? 아마 펄쩍 뛰었을걸.
― 휘발유 통이니 하는 말도 전부 거짓말이었네.
― 휘발유 통, 허허, 사실 그것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애 어머니에게 내가 그냥 해본 소리였어. 병원에서 자꾸 퇴원시키라고 하는데, 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이판사판 정 안 되면 휘발유 통이라도 끌어안고 있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써 보라고 말이야. 병원에서는 계속 환자를 퇴원시키라고 성화고, 내 양심상 끝까지 돌봐 주고 싶은 마음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지. 그런데 진짜로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병원이 발칵 뒤엎어졌지.
― 그럼 우리 병원에서의 휘발유 소동은 그때 써먹었던 것을 모방한 것이네. 그애들이 영악하게도 가짜 휘발유 화염병을 들고 감쪽같이 속였어. 그런데? 혹시, 그럼 이것도 네가 시킨 것이 아니야?
― 하하하, 그 얘기 듣고 보니 참 고소하더라.
― 그럼 정말 네가 시킨 거야?
김 과장의 웃음소리에 문득 의심이 든 내가 정색하고 물었다. 김 과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애를 네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병실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기발한 방법으로 돈벌레 원장을 골탕 먹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멋진 연극을 했어. 하하하, 정말 감동적인 연극이었어.
김 과장이 약 올리듯이 다시 한번 껄껄 웃으며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게 내밀었다. 내가 말했다.
― 그런데 그런 기발한 발상을 아이들만의 생각으로 한 것은 분명 아닐 테고, 물론 그 어머니겠지? 영악한 그 여자가 지금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끝이 쭈뼛해.
― 아니야.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야.
김 과장이 확신하는 어조로 말했다.
― 아니라면? 정말 그 어린애들이 스스로 한 일이란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아이의 어머니와 항상 함께 있는 남자가 있었어. 그 아이의 말로는 스미 갑판장 아저씨라고 했어. 내가 강제 퇴원 얘기를 꺼내자 너도 알 만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서울의 모 변호사 이름을 대더라. 그리고는 대뜸 그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자기의 경력을 내세우며 은근하게 협박했어. 만약 자기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 퇴원시킨다면 그냥 있지 않겠다고. 고소, 고발은 물론이고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이야. 사람이 얕고 경박해 보였어. 우리 병원에서의 휘발유 통 사건이나 네 병원에서의 화염병 사건은 모두 그자의 머리에서 나온 걸 거야.
― 그럼 그자가 지금도 뒤에서 아이와 어머니를 조종하고 있다는 말이야? 아이고, 골치야.
― 뭐 그렇기야 하겠어? 그 아이의 여선생이 와서 해결했다며?
― 해결은 무슨? 여전히 죽치고 앉아 있는데. 그래 네 의도대로 되고 보니 속이 후련하냐? 슈바이처 선생님.
― 그럼, 후련한 게 다 뭐야. 통쾌하다, 통쾌해. 하하하.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었지만, 김 과장 역시 내 걱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의 진전에 미안해하면서도, 그러나 김 과장은 휴머니스트다운 자신의 생각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뭐,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것보다도 야, 나 너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애 아버지, 네 병원, 그것도 제일 좋은 그 VIP실에서 고귀한 임종을 맞도록 해주자. 그곳에서의 임종이 그애 아버지가 진심으로 원하는 그런 임종의 장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그 고귀한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 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 같다.
― 고귀한 생명? 내 참……, 자칭 슈바이처다운 발상이네.
나는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김 과장의 말에 시니컬하게 말하고는 술잔을 비웠다. 나의 그런 태도에 다소 머쓱해질 만한데도, 김 과장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여전히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애 아버지가 폭풍우 속에서 아이들을 구했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너 혹시 그애 아버지가 쓴 비망록을 본 적 있어? 일기장 같은 노트야.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아마, 그애가 가지고 있을 거야. 그애에게 아버지의 노트를 보여 달라고 해봐. 그애 아버지가 그 섬에 온 날부터 대학노트에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이야. 아마 출판을 염두에 두고 저술하고 있었던 것 같았어. 그 비망록을 보고 나면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애 아버지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어.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의인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했고, 또 시인이기도 했어. 아름답고 슬픈 환상적인 시어를 구사하는 서정시인이라 할 만했어.
그 사람은 어쩌면 이런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우리의 영혼이 꼭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몰라. 아니, 그런 사람이었어. 우리는 그 사람을 잃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유토피아 하나를 잃어버린 거야. 안타까운 일이지.
김 과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김 과장의 표정에는 자못 비장미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김 과장의 그런 엄숙한 감정에 동화되지 못한 나는 여전히 냉소적인 웃음을 입가에 떠올렸다. 그런 내 태도는 일부러 모른 체하면서 김 과장이 시선을 내려 다시 술잔을 들어마셨다.
― 자, 마셔.
잔을 단숨에 비운 김 과장이 안주도 먹지 않고 내게 잔을 내밀어 술을 권했다. 김 과장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신 내가 말했다.
― 비망록? 선각자? 유토피아? 무슨 뜬금없는 거창한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있다고 하니 내 한 번 물어보기는 하지.
나는 일부러 건성으로 말했다. 그것보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이의 어머니가 왜 나타나지 않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어쩌면 김 과장은 아이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심 의심의 눈초리로 김 과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 그런데 애 어머니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아. 혹시 애 어머니를 네가 감춰 두고 있는 것 아냐?
― 그게 무슨 소리야?
김 과장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정색하고 물었다.
― 정말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어? 그건 정말 이상한데?
― 너 또 날 속이는 것은 아니지?
― 무슨 소리야? 속일 게 따로 있지.
그때까지 자못 냉소적인 내 태도에도 지그시 참고 있던 김 과장이 벌컥 화를 내며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나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얼굴까지 붉히는 김 과장의 태도로 보아 내 추측은 틀린 것 같았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 아, 미안, 그런데 오늘 내가 그애에게 황당한 약속 하나를 했다.
― 황당한 약속이라니?
잔뜩 화가 나 그사이에 잔을 비운 김 과장이 자기도 미안했던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안경을 추켜올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째깍째깍’ 소리 나는 시계를 구해 달라는 소년의 진지한 표정을 떠올리며, 병원에서 소년과 한 약속을 얘기했다.
― 하하하, 그 참 아름다운 약속이네. 이제 너도 휴머니스트 반열에 올려도 될 것 같다.
내가 얘기하는 동안에 완전히 화가 풀린 김 과장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 그런데 ‘째깍째깍’ 소리 나는 시계를 어디서 구하지? 요즘은 모두 전자시계라 그런 소리가 나지 않잖아. 옛날 태엽을 감아 돌리는 그런 시계라야 할 것 같은데. 야야, 우리 지금 이렇게 술추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아닌 것 같다. 시내 골동품상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그 째깍시계를 찾아내자.
김 과장이 호기롭게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는 술기운 반, 장난 반, 그런 마음으로 째깍시계를 찾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골동품점이나 고가구점 등 몇 군데를 뒤져도 그런 시계는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가게도 모두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결국 시계를 찾지 못한 우리는 다음날 각자 시계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딘지도 모른 채 택시로 시내를 휘젓다시피 돌아다니다가 지친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느 민속주점 앞이었다.
― 야, 저기 가서 목이라도 축이고 가자.
내가 말했다. 우리는 그 민속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황토로 벽을 칠하고 통나무로 의자를 만든 민속주점 의자에 앉아 실내를 두리번거리던 김 과장이 주점 안 구석 선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야, 저길 봐.
나는 김 과장이 가리키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 선반 위에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째깍시계가 스무 개나 넘게 다양한 종류와 크기별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민속주점 특유의 옛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실내 장식용이었다.
우리는 주점 주인에게 신분을 밝히고 사정사정하여 다시 반납한다는 조건으로 그중에서 제일 큰 째깍시계 하나를 보증금을 맡겨 두고 빌렸다. 발이 네 개 달린, 가로 지름 20cm 정도 크기의 타원형 탁상용 괘종시계였다. 다행히 풀려 있던 태엽을 감자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과장이 말하는 고귀한 임종이란 어떤 것인가? 그러한 임종을 위한 죽음의 방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집으로 돌아온 내 머릿속은 술기운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이제까지는 그저 관념 속에서만 머물고 있던 탄생과 소멸, 생명과 죽음의 존엄성이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관한 정제되지 않은 자각이 꿈틀꿈틀 자라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따르르릉’ 시계소리가 울렸다. 어제저녁 시험 삼아 일어날 시간에 맞춰 놓은 째깍시계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었다. 머리가 무거웠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시계를 챙겨 집을 나섰다. 출근하자마자 병실에 들어선 내가 시계를 건네자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바로 침대 머리맡에 시계를 놓은 소년이 외쳤다.
― 후크 선장, 눈을 떠! 시계소리가 들리지 않아? 후크 선장 눈을 떠! 악어가 다가오고 있어! 악어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만 콧날이 시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