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법정에 서다

제15화 악어 배 속 째깍 시계

by 임재도

임재도 작가의 법률감성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제15화 악어 배 속 째깍시계


개학과 더불어 아이들이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병원으로 왔다. 한 번은 그 여선생이 아이들을 인솔해 오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왔다. 그런데 방학 동안 병실에 조용히 있던 것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병원을 휘젓고 다녔다. 어르고 호통쳤지만, 그때뿐이고, 이 개구쟁이들의 계속되는 장난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 녀석들은 마치 병원이 제집인 양 설치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병실을 점령하고 있을 때는 병실에 가둬 둔 채 모두가 쉬쉬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이 후크 선장을 지킨다고 병실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을 데려간 이후부터 병실에서 풀려난 아이들은 주말마다 후크 선장을 본다고 병원으로 몰려와 복도며 화장실, 심지어 옥상 정원 휴게실까지 마구 휘젓고 다녔다.


존과 마이클이라는 두 어린 녀석은 여전히 빨랫줄 허리띠에 나무칼을 찬 괴상한 모습으로 병원 복도에서 칼싸움 놀이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새까맣게 탄 피부에 꾀죄죄한 옷차림을 한 아이들이 주말마다 병원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자 자연히 특별병동의 다른 환자나 가족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접근해서는 안 되는 송충이같이 성가신 존재가 되고 말았다.


― 아니, 박 과장, 주말마다 병원에서 날뛰는 그 양아치 같은 애들은 도대체 누구요?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건지, 그 부모들 교양 수준을 알 만해요.


월요일 아침 회진 시간에 특별병동 특실에 입원해 있던 골프장이 나이롱환자가 내게 버럭 역정을 내며 말했다. 창성시 국가산업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체의 사장으로 회사의 노사 문제를 피해 일부러 환자를 가장하고 병원에서 지내는 자이다. 명령조의 말버릇이 입에 익어 간호사들에게는 당연했고, 내게도 반말 조로 언성을 높이곤 했다. 말끝마다 교양이라는 단어를 달고 다녔지만, 정작 자신은 교양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자이다. 사실 그는 병실에 있는 시간보다 골프장에 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 죄송합니다. 병원의 사정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그 고상한 교양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골프장이 나이롱환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 선생님, 우리가 뭣 때문에 비싼 병원비 내고 여기 있는 줄 아세요?


낚시꾼 벚꽃환자의 두 번째 내연녀이다. 이 벚꽃환자는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에 있기보다는 원무과장이 특별히 주선해 준 낚싯배를 타고 바다에 가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자이다. 이들은 본처에게 들키지 않을 기막힌 밀회 장소로 이 특별병동을 아예 제집처럼 쓰고 있는 불륜 부부이다.


― 과장님, 이 병원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 사실입니까? 원장님을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군요.


그나마 좀 점잖다고 간호사들이 평가하는 창성시 지방의회 모 의원의 말이다. 은근한 협박이다. 무슨 신경쇠약이라나? 제 말로는 오직 시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심신이 지친 나머지 당분간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지위를 이용하여 돈깨나 만져 보겠다는 심산이다. 정계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원장의 허영심과 약점을 단단히 잡고 원장을 수족처럼 주무르는 자이다.


나는 이 자를 볼 때마다 속이 메스꺼워진다. 솟아오르는 구토증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는데, 간호사가 달려와 원장이 급히 나를 찾는다고 했다. 회진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원장의 방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병원의 조경 시설과 옥상정원을 관리하는 일은 물론 병원의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 정 씨가 막 불려 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이가 예순 살이 넘은 병원 근처 마을에 사는 토박이였다. 원장과 먼 친척뻘 되는 그 마을 이장이 병원의 잡부로 써달라고 특별히 부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원장이 호통부터 내질렀다.


― 정 씨는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얼 하고 있었던 거요. 그리고 박 과장, 이걸 한번 봐요.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오.


원장이 책상 위에 놓인 깨진 난 화분 세 개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오늘은 특히 원장의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있다. 원장의 심정을 알 만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어제 일요일, 그 녀석들이 저지른 사고 소식을 이미 듣고 있었다.


특별병동의 병실은 서울의 고급 오피스텔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다고 했지만, 이 특별병동 건물의 옥상은 가장자리를 빙 둘러 벽돌을 쌓아 화단을 조성하고 중앙에는 인공 연못과 분수 시설까지 갖춘 운치 있는 야외정원이라 할 만했다. 특히 이 옥상정원은 원장이 사적으로도 애지중지하는 곳이었다. 원장은 한국 자생춘란과 다육식물에 각별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특히 자생춘란에 대해서는 전문가에 필적할 만한 높은 안목과 식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원장은 병원 옥상정원의 한쪽에 유리 온실을 지어 갖가지 종류의 다육식물을 가꾸고, 또 다른 온실 한 곳에는 직접 채집하고 사들인 자생춘란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병원 복도에서 뛰노는 것도 모자라, 어제 일요일 오후에는 옥상까지 휘젓고 다니며 그곳의 인공 연못과 분수를 아예 저들의 물장난 놀이터로 삼더니, 결국 원장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춘란 온실의 유리창 하나와 그 속에 든 고가의 춘란 화분 세 개를 박살 내고 말았다고 했다.


― 그 악다구니 놈들이 병실에서 나가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요.


원장이 다시 한번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치며 나를 향해 소리 지르고는, 옆에 서 있는 정 씨를 쏘아보며 엄포를 놓았다.


― 그리고 정 씨, 이 난초 살려내요. 이 난초 값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요? 살려내지 못하면 정 씨가 물어내든가, 아니면 같은 난초를 구해 오든가.

― 아이고 원장님, 지가 무슨 재주로……. 진즉 물어낼 사람은 그놈들인데.

― 그애 녀석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모두 다 그놈들을 내버려 둔 정 씨 책임이지.


훼손된 난이 얼마나 애통했던지, 원장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 아닌 억지로 정 씨를 몰아붙였다. 화분이 깨어졌다고 해서 정작 그 안에 심어진 난까지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도, 원장은 이를 빌미로 일부러 내게 까탈을 부리고 있었다.


― 그라믄 지가 할 말이 없지만서도, 그란데 뭐라더라? 뭐 후쿠 선장? 피투 팬? 그런 사람이 참말로 이런 난초를 갖고 있을라나 모리겠네.


매양 사람 좋고 순진하여 좀 모자라기까지 한 정 씨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혼잣말 사투리로 말했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원장이 뜬금없어 보이는 정 씨의 말에 짜증 반 호기심 반의 음성으로 물었다.


― 예, 지가 그놈들이 사고를 칫다는 말을 듣고 옥상에 갔는데…….


정 씨가 대중없이 주섬주섬하는 말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어제 일요일인데도 출근하여 병원의 조경시설을 돌보고 있던 정 씨는 아이들이 옥상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당직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옥상으로 갔다. 그러나 그때는 나무 칼싸움을 하던 두 꼬마 녀석이 이미 유리 온실의 유리창 하나를 박살 내 버린 뒤였다. 그 두 녀석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존과 마이클이 분명했다. 정 씨는 원장이 아끼는 난초 화분까지 깨어져 큰일 났다는 생각에 먼저 그중 큰 놈의 허리춤을 붙잡아 사정없이 볼기짝을 내리치며 말했다.


― 야, 이눔아. 이 난초가 울매나 귀한 긴데, 니 인자 큰일 났다. 니 애비 딜꼬 온나. 물어내야겠다.


그러자 볼기짝을 얻어맞고 화가 난 존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 에이 씨이! 이깟 토끼풀이 뭐가 귀해. 산에 가면 흔해 빠졌는데. 후크 선장 집에 가도 이딴 토끼풀은 가득해.

― 뭐라고! 이눔이 잘못을 빌기는커녕 엇다대고 대들어. 거짓부렁까지 하고, 이눔의 새끼, 어디 혼 좀 나봐라.


존의 당돌한 말에 사람 좋은 정 씨도 화가 나 연방 존의 엉덩짝을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러자 혼이 나고 있는 제 형을 보고 있던 마이클이 눈을 부릅뜨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정 씨에게 덤벼들며 소리쳤다.


― 거짓말 아니야. 피터 팬 대장 집에 가면 이딴 토끼풀은 가득 있단 말이야. 나도 봤어. 진짜야. 피터 팬 대장에게 말해서 물어주면 될 것 아냐.


물어내기까지 해야 한다는 원장의 으르는 말에 겁이 난 정 씨가 궁한 나머지 존과 마이클의 악다구니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러자 원장은 토끼풀이라는 아이들 말을 진짜로 알아듣는, 평소 좀 모자라기까지 한 정 씨의 두서없는 말에 어이가 없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이런 정 씨를 붙들고 물어내야 한다는 둥 철부지 실랑이나 하는 자신의 경박한 행동이 겸연쩍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원장은 이번에는 화살을 내게로 돌려 쏘아붙였다.


― 내 참, 이렇다니까. 아이들하고 똑같군. 그건 그렇고, 박 과장, 송 의원님도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해요.


그 강도 같은 지방의원 나리가 벌써 원장을 찾은 모양이었다. 원장의 호통은 계속되었다.


― 원무과장 말로는 지난주에도 병실 세 개가 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입도 벙긋 못 하고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이게 모두 다 박 과장 탓 아니오? 박 과장이 모두 책임져요.


원장은 그동안 참고 있다가 단단히 벼른 듯 막무가내로 나를 몰아붙였다. 아침부터 그렇게 부대낀 나는 퇴근을 하면서 소년의 병실을 찾았다. 원장의 씨근대던 모습이 온종일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참이었다. 어떻게든 소년을 타일러 우선 일반병동으로 옮길 참이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소년이 말했다.


― 선생님, 어젯밤 아빠가 한참 동안 눈을 뜨고 절 바라봤어요.

― 그래?

― 그런데 아빠가 분명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 아버지는 말을 못 하신다. 이제는 눈도 잘 뜨지 못하시는걸.

― 아니에요. 분명 저에게 무슨 말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에요. 아빠는 바다의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깊은 물속 캄캄한 곳에 있는 물고기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전 그런 아빠의 말도 못 알아들으니…….


그런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듯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축 처진 소년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소년이 고개를 들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선생님,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 그래? 무슨 부탁?

― 저 ‘째깍째깍’ 소리가 나는 시계 하나만 구해 주세요.

― 그건 무얼 하려고?

― 후크 선장은 악어 배 속의 시계소리를 듣고 도망쳤어요. 아빠는 후크 선장이었어요. 아마 아빠가 시계소리를 들으면 도망가려고 벌떡 일어나실지도 몰라요.


나는 하마터면 크게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그러나 소년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가슴이 울컥했다.


― 그래, 구해 보마. 네 말대로 아버지가 시계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면 좋으련만…….


나는 일반병동으로 옮기겠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병실을 나오고 말았다. 나는 소년과 아이들에게 분명히 약속했었다. 후크 선장은 어디로도 옮기지 않고 이 병실에서 내가 치료해 주겠다고. 그것도 그들이 우상처럼 받드는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소년의 진지한 눈빛이 양심의 바늘이 되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하고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전히 소년의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는데 함부로 병실을 옮길 수도 없었다. 비록 아이들의 화염병 놀이는 거짓 속임수였지만, 김 과장의 말대로 진짜 휘발유 통을 들고 설치던 그 어머니가 불쑥 나타나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여전히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원장은 자신의 탈법행위가 들통날까 봐 제 발이 저려 여전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괜히 내가 나서서 그로 인해 병원에 무슨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나는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교양이 덕지덕지 앉은 무리나 원장의 사정은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오기도 생겼다.


그러나 내 맘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시계를 구해 달라고?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시계라면 옛날 태엽을 감아 돌리는 괘종시계뿐일 텐데, 그런 시계를 어디서 구하나? 그런데 이런 순진한 아이의 어머니가 정말로 휘발유 통을 들고 설쳤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창성병원의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생 마안채?


김 과장은 소년의 인질이 되어 버린 내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일부러 사투리를 쓰며 대뜸 놀리기부터 했다.


― 그래, 재벌가 회장님의 수발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올시다. 불쌍한 이 하인을 위해 소주나 한잔 사주시오.

― 아이고, 미안이 백배올시다. 주안상 푸짐하게 대령하겠나이다.


사실 내가 김 과장을 만난 것은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버린 내 처지를 설명하고,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하는 조언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소년의 어머니나 소년을 어떻게 설득하여 우리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는지, 그때까지 병원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소년의 어머니가 정말 휘발유 통을 안고 농성을 한 그런 독한 사람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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