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토끼머리 바위섬에 갇힌 아이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이날 새벽, 선생님은 아버지의 발동선을 타고 떠났다.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억지로 안기다시피 말린 미역이며 건어물을 선생님의 여행 가방에 넣었다. 단지 한 달 동안의 이별인데도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모두 방파제에 나와 선생님을 배웅하며 아쉬워했다. 다만 나나만이 컹컹거리며 방파제 위를 촐랑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버지의 발동선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어린 마이클과 존이 졸린 눈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선생님이 떠난 후 해적놀이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소년은 이른 새벽 바위섬에 올라가 해적 깃발을 단 아버지의 발동선이 먼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소년은 피터 팬의 네버랜드와 같은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멋지고 가슴 설레는 황홀한 순간이었다.
저녁, 빨갛게 물드는 노을 속 먼바다에서 해적 깃발을 단 후크 선장의 해적선이 나타나면, 소년의 가슴에도 깃발이 나부꼈다. 이윽고 해적선이 바위섬 앞으로 다가오고 소년이 “아빠!”하고 나무칼을 흔들며 소리치면, 해적선 조타실 안에서 아버지가 팔을 내밀어 흔들었다. 배가 바위섬 앞을 지나 반대편 방파제 쪽으로 향할 때, 소년도 바위섬에서 내려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방파제를 향해 달렸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파제 끝에 다다르면, 이미 방파제에 도착하여 배에서 먼저 내린 스미 아저씨가 방파제 철제 고리에 밧줄을 묶고 있었다. 그동안 소년은 물론 아이들과도 한층 친해진 스미 갑판장을 소년이나 아이들은 이제 ‘스미 아저씨’라고 친숙하게 불렀다.
배의 시동을 끄고 배에서 내린 아버지가 숨을 쌕쌕거리는 소년을 번쩍 안아 치켜들었다. 배의 정박을 갈무리한 스미 아저씨가 먼저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소년의 손을 잡고 방파제를 걸어 나와 천천히 모래사장을 함께 걸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 아빠처럼 씩씩한 후크 선장요.
― 허허, 후크 선장은 나쁜 사람이야.
― 아니에요. 후크 선장은 불쌍한 사람이에요.
― 불쌍한 사람이 되면 더욱 안 되지.
― 아빠, 사실은 장난이고요. 저는 후크 선장 해적선보다 더 큰 기선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선장이 될 거예요. 바다를 건너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요. 저 바다 건너편에는 진짜 네버랜드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 때 소년의 꿈은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고, 노을 속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비상하고 있었다.
사고는 선생님이 떠난 열흘 후에 일어났다.
그날 늦은 오후 시간, 팔월 초순의 내리쬐는 땡볕이 제풀에 지쳐 겨우 숨을 고르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모래사장에 모였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보다는 그 모래사장이 아이들의 놀이터로는 더 제격이었다.
― 피터 대장, 우리 귀양살이 바위에 한 번 가보자.
존이 말했다. 해적놀이가 시작된 이후로 아이들은 모두 동화 속 인물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평상시에도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도 제일 많고 키도 큰 소년은 후크 선장의 해적선을 배웅하거나 마중하면서 아침저녁 거의 매일 모래사장과 바위 사이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건너뛰어 쉽게 올라가는 바위섬이었다. 그러나 어린 마이클이나 존은 물론이고 소년과는 달리 주로 마을과 학교에서만 놀았던 다른 아이들은 그곳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 선생님이 인어가 있다고 했어.
마이클이 말했다. 소년은 바위섬을 바라보았다. 밀물이면 몰라도 썰물이 되어 물이 빠져나간 지금은 어린 마이클이나 존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모래사장 끝 바위섬 쪽으로 몰려갔다.
― 예쁜 아기 물고기가 있어.
바닥이 드러난 징검다리 돌 아래를 지나던 웬디가 썰물과 함께 빠져나가지 못하고 움푹 팬 웅덩이에 갇혀 버린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말했다.
― 어디? 어디?
존과 마이클이 웬디에게로 뛰어갔다. 모든 아이가 웅덩이 둘레로 모여들었다. 그 웅덩이는 그리 깊지 않아 아이들의 물장난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웅덩이 속 작은 물고기들은 수족관의 금붕어들처럼 빨강, 파랑, 검정 등 여러 가지 색깔을 띠었다.
어떤 물고기는 제 몸통보다도 더 큰 왕방울만 한 눈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어떤 물고기는 등에 가시같이 삐죽 솟은 지느러미가 달린 것도 있었다. 선생님이 얘기한 아프리카 얼룩말처럼 얼룩덜룩 줄무늬를 한 것도 있었다. 바위 틈새에서 자라난 해초 사이를 재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거북이처럼 꾸물꾸물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있었다. 등에 가시처럼 뾰족한 지느러미가 있는 빨간 물고기는 느림보 물고기였다. 그런 물고기를 존이 겁 없이 가만히 손바닥을 모아 잡았다.
― 안 돼.
― 아악!
소년의 외침과 존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존이 비명을 지르며 물고기를 떨어뜨리고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 왜 그래?
모두가 놀란 눈으로 존을 보았다.
― 독침 물고기야.
소년이 말했다.
― 아야야!
그렇게 말하며 입속에서 꺼낸 존의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이 금세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 많이 아파? 빨간약 발라야 해?
어린 마이클이 겁먹은 표정으로 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 괜찮아, 조금 있으면 저절로 나아.
전에 그 물고기에 쏘여 본 적이 있는 소년이 말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밀물이 들어왔다. 가볍게 살랑대던 바람이 흔들흔들 불기 시작했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던 하늘 한 모퉁이에 어느새 시커먼 먹구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누구도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 귀양살이 바위에 올라가 보자.
투틀즈와 슬리가 먼저 바위섬을 오르기 시작했다.
― 인어들이 진짜 있을까?
존과 마이클이 그 뒤를 따랐다. 웬디와 소년이 마지막으로 바위섬에 올랐다. 소년에게는 이미 낯익은 풍경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색달랐다.
― 인어가 보이지 않아.
바위섬 끝 가장자리까지 나아가 위태롭게 아래를 살펴보던 마이클이 말했다. 아이들의 눈에 까마득한 그 아래에는 삐죽삐죽 날카로운 바위들이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흔들흔들 불기 시작하던 바람이 아이들의 옷깃을 팔랑이고, 이제는 제법 거세진 파도가 물속 바위와 바위섬 아래 절벽을 때렸다.
― 인어는 밤에만 나와.
웬디가 말했다.
― 왜?
마이클이 물었다.
― 낮에는 바다 속에서 잠을 자. 별이 반짝이면 별님과 얘기하러 나온다고 했어.
웬디가 말했다.
― 선생님이 바위에 귀를 대면 인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어.
존이 말했다.
― 지금은 인어들이 잠자는 시간이야.
웬디가 다시 말했다.
― 그래도 몰라. 자지 않고 있는 인어들도 있을지 몰라.
투틀즈가 말했다.
― 그래, 진짜인지 한 번 해보자.
슬리가 먼저 바위 바닥에 엎드려 귀를 갖다 대고 눈을 감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따라 했다. 아이들이 눈을 감고 엎드려 있는 사이에 하늘은 더욱 짙은 먹구름으로 덮이고, 밀물로 바뀐 바닷물이 바위섬과 모래사장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바람도 더욱 거세졌다. 바위섬을 때리는 파도소리도 한층 더 커졌다.
그러나 눈을 감은 아이들의 귀에는 그런 변화의 소리가 모두 바다 속 인어들이 내는 소리로 들렸다. 아이들의 감은 눈에 빛줄기 하나가 스쳐 갔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빛이 이제 별이 나타나 잠든 인어들을 깨우는 별빛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눈을 뜬 것은 빛이 스쳐 지나간 직후 ‘우루루꽝!’하는 천둥소리를 들은 뒤였다. 순식간에 ‘우두두둑’하는 빗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바위섬을 내려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년은 징검다리 사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밀물로 가득 차 있었고, 징검다리 바위에 부딪힌 사나운 파도가 하늘 높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국지성 돌풍과 소나기였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파도도 한층 더 높아졌다. 바위섬 절벽 아래에서 부딪힌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치솟아 아이들의 머리까지 튀어 올랐다. 거센 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번개와 천둥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라 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 모두 바닥에 엎드려.
소년이 외치며 어린 마이클을 안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삐죽 솟은 돌 하나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다른 아이들도 제각각 바위 위에 따개비처럼 납작 엎드렸다. 바람은 더더욱 거세지고, 바위섬 아래서 부딪힌 파도가 물기둥이 되어 솟아올랐다가 폭포처럼 아이들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소년은 엎드린 채로 비바람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