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귀양살이 바위의 인어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먼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후크 선장과 해적단은 남은 횟감 등 안줏거리와 술병을 챙겨 소년의 집으로 갔다. 이제 사그라져 가고 있는 잉걸불 가에는 선생님과 아이들만 남았다. 제일 어린 마이클은 아직 온기를 뿜어내는 불가에 깔아놓은 휴대용 매트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존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 선생님, 서울에 안 가면 안 돼요?
― 그래요, 선생님. 방학에도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있어요.
투틀즈가 말했다.
― 얘들아, 저기를 봐.
대답 대신 선생님이 모래사장 끝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던 토끼머리 바위섬이었다.
― 저 바위가 무슨 바위일까? 누가 아는 사람?
― <토끼머리 바위>라고 해요.
어른들의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은 아이들이 대답했다.
―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만, 다른 이름도 하나 있어. 있었지? 피터 팬이 인어 호수에서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나왔던 바위 말이야?
― 아, 알았어요. 귀양살이 바위요.
소년이 말했다.
― 그래, 저 바위는 바로 귀양살이 바위야. 귀양살이 바위에는 누가 있었지?
― 인어들이요.
모두가 함께 대답했다.
― 그래, 지금 저 바위 아래 물속에도 인어들이 놀고 있어. 우리 인어들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한 번 들어 볼까?
― 어떻게요?
― 자, 모두 눈을 감고 이렇게 모래땅에 귀를 대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것처럼 먼저 모로 누워 모래바닥에 귀를 갖다 댔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따라 모두 바닥에 귀를 갖다 댔다. 선생님이 귀를 바닥에 대고 웅크린 채로 말했다.
―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
모두가 손을 들었다.
― 스르렁, 하는 소리가 들리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
모두가 손을 들었다.
― 자그락자그락, 찰랑찰랑, 보글보글, 톡톡톡, 또 다른 소리도 들리지?
― 예.
― 그 소리들은 모두 인어들이 내는 소리야. 쏴아, 하는 소리는 인어들이 빠르게 헤엄쳐 가는 소리고, 스르렁, 하는 소리는 인어들이 빗으로 머리를 빗는 소리야. 자그락자그락거리는 소리는 인어들이 모여 공기놀이하는 소리고, 찰랑찰랑거리는 소리는 인어들이 바위를 잡고 꼬리로 물장구를 치는 소리란다.
선생님은 이제 자세를 바꾸어 모래바닥에 반듯하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말했다.
― 어머머! 보글보글, 톡톡톡, 이 소리는 또 뭘까? 아, 알았다. 이 소리는 비눗방울 놀이하는 인어들의 비눗방울이 터지는 소리구나. 자, 그럼 이제 누운 채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봐. 무엇이 보이지?
― 달님요.
아이들이 모두 바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또 뭐가 보이지?
― 아, 자세히 보니 달님 뒤에 있는 별님도 보여요.
웬디가 말했다.
― 그래요. 달님 뒤에서 별님이 반짝이고 있어요. 구름도 보이고요.
아이들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 그래, 달이 있어도, 구름이 끼어 있어도, 별은 그 뒤에서 항상 반짝이고 있단다. 그럼 별은 왜 쉬지 않고 반짝거릴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 별이 반짝이는 것은 별들이 바다 속의 인어와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야. 별은 얘기할 때 소리 대신 빛을 내거든. 자, 이제 다시 눈을 감아 봐. 별과 인어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 보자. 존, 눈을 감아도 별이 보이지? 달님이 있어도, 구름에 가려도, 존은 별을 볼 수 있지?
― 예. 아, 구름 뒤에 꼬마별 하나가 보여요.
― 그래! 그 꼬마별이 인어에게 무슨 말을 하지?
― 인어야, 바다로 놀러 갈게, 해요.
― 그럼 웬디, 인어가 무어라고 하지?
― 그래, 어서 와, 이곳 바다 속에는 예쁜 물고기와 바다풀들, 아름다운 보석도 있어, 내가 보여줄게, 해요.
― 슬리, 별은 또 무슨 말을 하지?
― 바다 속이 예쁜 것은 우리가 반짝이 빛을 비춰 주기 때문이야, 해요.
― 투틀즈, 또 인어가 어떤 대답을 하지?
― 고마워, 별들아. 반짝이 빛을 비춰 줘서, 그래요.
― 피터 팬, 너는 들리지 않니?
선생님이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누운 자세에서 일어나 앉았다.
― 아, 저는 지금 팅크 벨 금가루를 묻히고 꼬마별들 사이를 누비고 있어요. 앗, 금방 꼬마별 하나와 부딪힐 뻔했어요. 아, 저기 진짜 네버랜드가 보여요.
― 정말?
다른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 그래, 정말이야.
여전히 피터 팬이 누워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 이제 네버랜드에 다 왔겠구나?
선생님이 말했다.
― 예, 이제 거의 다 왔어요.
― 네버랜드에 누가 있니?
― 진짜 슬리, 투틀즈, 닙스, 개구쟁이 컬리, 아, 쌍둥이도 모두 있어요.
― 그 아이들은 어떻게 생겼어?
― 옷도 찢어졌고, 그애들은 엄마, 아빠가 없어요. 불쌍해요.
― 웬디와 마이클, 존은?
― 없어요. 아마 집으로 가버리고 애들만 남아 있는가 봐요.
― 너무 불쌍하다.
누운 피터 팬을 보면서 웬디가 말했다.
― 자, 피터 팬, 이제 일어나 선생님 얘기를 들어 볼래?
피터 팬이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 얘들아, 선생님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
― 예.
혹시나 하는 기대에 아이들이 함께 외쳤다. 그 바람에 잉걸불 가 매트 위에서 잠들어 있던 마이클이 깨고 말았다. 그러나 마이클은 일어나 앉아 어리둥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모로 누워 잠들었다.
― 네버랜드 아이들은 누가 돌봐 주고 있었지?
― 피터 팬과 웬디요.
아이들이 함께 말했다.
― 그래, 그 아이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 피터 팬과 웬디가 아빠와 엄마가 되어 돌봐 주고 있었지?
― 예.
― 음, 얘들아. 전에 선생님이 아프리카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지?
― 예.
― 사자와 얼룩말이 사는 그 아프리카 말이에요?
존이 말했다.
― 그래, 그 아프리카.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지금도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단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아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들도 있어. 그리고 후크 선장 해적들보다 더 무서운 진짜 해적들이 총칼을 가지고 아이들을 해치고 있는 곳도 있어. 누군가 가서 그 아이들을 돌봐줘야겠지?
― 예, 그래요.
웬디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 그래서 선생님이 방학 동안에 아프리카에 가서 그 불쌍한 아이들을 돌봐 주기로 했어. 웬디가 네버랜드 아이들을 돌본 것처럼, 그곳에 가서 아이들의 밥도 해주고, 다친 상처도 치료해 줘야 해. 선생님은 그곳 아이들과 약속했어. 방학이 되면 가겠다고. 그 아이들은 지금도 선생님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이제 선생님이 왜 가야 하는지 알겠지? 대신에 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에는 재미있는 동화책을 많이 사 올게. 한 달만 있으면 돼. 선생님은 바로 돌아올 거야.
선생님이 곁에 앉은 슬리와 투틀즈의 어깨를 차례로 토닥이며 말했다.
― 그래도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웬디가 말했다.
― 아프리카에 가서 선생님이 별들에게 얘기할게. 그러면 별들은 반짝이 빛깔로 저 귀양살이 바위 인어들에게 얘기할 거야. 그러면 인어들이 너희들에게 얘기해 줄 거고.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오늘 한 것처럼 모래나 바위에 귀를 대고 가만히 인어들의 얘기를 들어 봐. 인어들이 선생님의 소식을 들려줄 거야, 알겠지?
― 예.
모두가 함께 대답했다.
― 자, 이제 모두 집으로 가자. 달님도 별님도 인어들도 모두 잠잘 수 있도록.
선생님이 그때까지 매트에 잠들어 있는 마이클을 안고 일어났고 그 뒤를 아이들이 따랐다. 나나가 촐랑촐랑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을 따랐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미풍이 마이클을 안고 가는 선생님의 어깨 위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달빛을 받은 바닷물결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소년의 집은 마을 왼쪽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소년도 일부러 선생님과 아이들을 따라 웬디의 집까지 갔다. 웬디의 집 대문 앞에서 웬디가 선생님으로부터 마이클을 받아 안고 서로 헤어졌다.
―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모두 잘 가.
― 그래, 내일 보자. 안녕.
소년은 다시 모래사장 쪽으로 되돌아 나와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랐다. 이미 서쪽으로 기우뚱 기운 달이 소년의 그림자를 따라오고 있었다. 소년은 집으로 걸어가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중간에 혼자 가버렸을까?
해적놀이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과 함께 오는 엄마를 보았을 때 정말 신이 났었다. 오늘은 엄마도 선생님처럼 함께 해적놀이를 할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이가 끝나고 모두가 석쇠 불판 앞에 모여 앉았을 때 유독 엄마만 그 자리에 없었다.
소년은 항상 외톨이로 지내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런 엄마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하루빨리 엄마의 마음이 열려 선생님처럼 함께 어울려 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면 아빠도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소년은 언덕길을 올라가며 곰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