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후크 선장, 폭풍우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그때 소년의 눈에 검은 해적 깃발을 펄럭이는 아버지의 발동선이 들어왔다. 해적선 <졸리 로저호>는 거친 파도에 가랑잎처럼 흔들리며 바위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타실에 서서 키를 잡은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러나 사나운 바람에 소년의 목소리가 아버지에게 들릴 리 없었다. 아버지의 배는 소년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 큰일이다. 소년은 위험한 것도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상의를 벗어 흔들며 소리쳤다. 사나운 바람에 소년의 몸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소년을 발견한 사람은 아버지 곁에 서 있던 스미 아저씨였다. 조타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위섬 위의 소년을 바라본 스미 아저씨가 깜짝 놀라 손짓으로 아버지에게 무언가 외치는 것 같았다. 이어 아버지가 조타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치며 소년에게 바닥에 엎드리라는 손짓을 했다. 소년은 다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이들은 그때까지도 혼비백산하여 울면서 비명을 질렀다.
― 이제 괜찮아. 아빠가 왔어. 후크 선장이 왔어.
소년이 엎드려 있는 아이들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의 배가 파도가 부딪치는 바위섬 왼편을 돌아 오른편으로 왔다. 그쪽은 바위섬이 왼쪽에서 부딪히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여 그나마 잔잔했다. 스미 아저씨에게 조타실의 키를 맡긴 아버지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물보라를 덮어쓰며 바위섬 뒤쪽 징검다리 쪽으로 헤엄쳐 갔다. 드디어 아버지가 아이들이 있는 바위섬 위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아마 소년 혼자 바위섬 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바닥에 따개비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다른 아이들을 발견한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먼저 제일 어린 마이클과 존을 한꺼번에 왼쪽 허리에 꿰찬 채로 바위섬을 내려갔다. 징검다리 길에는 여전히 파도가 굉음을 울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파도를 뚫고 나아간 아버지가 모래사장에 존과 마이클을 내려다 놓고 다시 바위섬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웬디를 안고 내려갔다. 다시 바위섬으로 올라온 아버지의 오른 팔꿈치와 왼쪽 무릎의 옷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투틀즈를 안고 내려갔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이마에서도 피가 흘렀다.
비바람은 더욱더 심해졌다. 천둥 번개도 여전했다. 왼편 바위섬에 부딪힌 파도가 엄청난 물기둥이 되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그 물벼락을 맞은 아버지의 몸도 일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침착했다. 아버지가 다시 슬리를 안고 바위섬을 내려갔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눈썹과 오른쪽 무릎도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마지막 남은 소년이 아버지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놀라 소리쳤다.
― 그대로 있…….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레 같은 파도소리가 울리며 엄청난 물벼락이 소년의 몸을 덮쳤다. 소년의 몸이 순식간에 바위섬 아래로 휩쓸려 떨어졌다.
― 아, 안 돼!
아버지가 외치며 바위섬 끝 가장자리로 기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요행히 소년은 바위섬 오른편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가 가장자리 끝에 엎드려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손을 내밀어 잡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아버지가 허리의 벨트를 풀었다. 그러나 그 벨트도 짧았다. 바위섬 벽은 너무 가팔라 소년이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비와 파도에 젖은 이끼가 자란 미끄러운 암벽은 너무 위험했다.
바위섬 아래 바다에는 넘실대는 물결 사이로 날카로운 돌들이 상어 이빨처럼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돌출해 있었다. 만약 그대로 떨어지면 날카로운 바위에 소년의 몸은 찢어지고 말 것 같았다. 올라갈 수도 떨어질 수도 없는 상태로 소년은 소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 같은 섬광이 연신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천둥소리는 하늘을 찢어 놓으려는 듯 굉음으로 울부짖었다. 사나운 물보라와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 아빠, 무서워!
소년이 겁에 질려 외쳤다.
― 꼭 잡고 있어. 떨어지면 안 돼. 아빠가 배를 갖다 댈 게.
아버지가 다시 바위섬 뒤쪽으로 내려가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바위섬 오른쪽에 있는 배의 선수 쪽으로 헤엄쳐 갔다. 조타실에서 나온 스미 아저씨가 아버지에게 밧줄을 던졌다. 아버지가 밧줄을 잡고 다시 배에 올랐다.
― 조금만 더 참아!
소나무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아버지가 다시 조타실로 들어가 키를 잡고 뱃머리를 소나무 아래로 돌려 다가왔다. 바위섬 방파제가 없는 오른쪽 끝으로 나온 배는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배의 시동이 걸린 채로 나아가는 힘을 이용하여 뱃머리를 바위에 갖다 대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물결이 높게 일렁거려 쉽지 않았다.
― 아빠, 팔이 아파. 떨어질 것 같아.
소년이 다시 외쳤다.
― 조금만 더 견뎌. 꼭 잡고 있어!
아버지가 외쳤다. 높게 일렁이는 물결이 잠시 잦아든 틈을 타, 드디어 소나무 아래 바위에 뱃머리를 갖다 붙인 아버지가 조타실에서 나왔다. 스미 아저씨가 다시 배의 키를 잡았다. 배는 여전히 시동이 걸린 채였다. 배의 추동력을 이용하여 뱃머리를 바위에 대고 있긴 하나, 일렁이는 높은 물결 때문에 배는 여전히 가랑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겨우 뱃머리 끝으로 다가간 아버지가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고 일어나 팔을 뻗으며 외쳤다.
― 됐어. 이제 손을 놔. 아빠가 받을게.
― 아빠, 무서워.
― 괜찮아. 뛰어내리면 아빠가 받을게. 눈을 꼭 감고 손을 놔버려.
소나무 가지가 마치 부러질 듯이 흔들렸다.
― 아빠, 무서워.
― 괜찮아. 자, 너는 피터 팬이야. 피터 팬은 하늘을 날 수도 있잖니? 무서워 말고 빨리 뛰어내려.
― 아빠! 못 하겠어.
그때 바위섬 왼편에서는 먼바다에서부터 힘을 키워 엄청나게 자라난 파도 하나가 바위섬을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 괜찮아. 아빠가 있어. 팅크 벨 금가루를 묻히고 하늘을 날아 봐.
아버지가 다시 한번 절박하게 외쳤다. 비와 파도, 그리고 흐르는 피에 얼룩진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야차 같았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요정 팅크 벨이 소년에게 날아왔다.
“내 금가루는 마법의 가루야. 피터 팬, 너는 날 수 있어. 네가 믿기만 하면 돼. 나와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
팅크 벨이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소년의 감은 눈에 금빛 빛줄기가 다가왔다. 팅크 벨의 파르르 떠는 날개에서 금가루가 쏟아져 소년의 몸을 휘감았다. 소년은 잡고 있던 소나무 가지를 살며시 놓았다. 소년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솟아올랐다. 소년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때 바위섬 왼편까지 몰려온 파도가 굉음을 울리며 바위벽을 때렸다. 아버지가 떨어지는 소년의 몸을 받음과 동시에 조타실 쪽으로 밀쳤다. 팅크 벨의 금가루 환상에서 깨어난 소년의 몸이 갑판 위에 데구루루 뒹굴었다. 스미 아저씨가 키를 놓고 갑판으로 나와 소년을 안고 조타실로 들어갔다.
순간 집채보다 더 큰 파도에 선미 쪽 왼편 측면을 맞은 배가 중심을 잃고 오른쪽으로 빙글 돌았다. 바위벽을 때리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파도의 물보라가 폭포처럼 갑판 위로 쏟아졌다. 뱃머리에 위태롭게 서 있던 아버지의 몸이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순식간에 바다로 휙 빨려 들고 말았다.
6개월 후.
파도에 휩쓸리면서 물속 바위에 부딪혀 머리가 깨어지고 목뼈가 부러진 아버지는 꼼짝도 못 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바다에 휩쓸린 직후 때마침 달려온 웬디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아버지는 바다에서 구조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었다.
― 그동안 삼촌이 도와주고 있었지만, 얼마나 더 견딜지…….
어머니가 소년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말하는 삼촌이란 스미 아저씨를 말했다.
다시 6개월 후.
여전히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 어제 어촌계 수협 사람들이 발동선과 집 뒤 밭을 경매에 부쳤다고 하더라. 이제는 삼촌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발동선 산다고 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니…….
다시 6개월 후.
― 이제 돈이라고는 모두 떨어졌다. 퇴원시키자.
어머니가 말했다.
― 안 돼요. 아빠는 반드시 깨어날 거예요.
소년이 말했다.
― 병원에서도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자꾸 나가라고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 그래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나 때문에 아빠가 저렇게 되었어요. 제가 깨어나게 할 거예요.
소년이 말했다.
― 그래,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서라도 버틸 때까지 버텨 보자.
그렇게 한 것이 김 과장이 말한 휘발유 통 사건이었다.
다시 6개월 후.
이제 섬마을 초등학교 분교를 졸업한 소년은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소년이 다니는 중학교는 섬마을을 왕래하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면소재지에 있었다. 학교에서 선착장의 반대 방향에 있는 창성병원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렸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소년은 방과 후 학교에서 곧바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와서 어머니와 교대로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 오늘이 여름방학 하는 날이지?
어머니가 말했다.
― 예.
― 그러면 오늘은 학교에 가고, 방학 동안에는 네가 병실을 지켜라. 나는 서울에 가야겠다. 돈을 벌어야지. 병원비를 벌어야 아빠를 살리지.
― 예.
그날 소년은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방학식을 마치고 곧바로 창성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던 병실에는 다른 환자가 누워 있었다.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이틀 후 창성병원의 김 과장이 소년을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왔다.
나는 그렇게 그 소년, 피터 팬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