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시나 글을 짓는 행위(나아가 그 행위를 통하여 형상화된 시나 글)가 누군가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내지는 상실감에 대한 치유기능을 가진다고 할 때, 이 시는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1년 여에 걸친 폐암 투병 끝에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당시 항암치료를 거부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고, 그래서 그 상실감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생의 무상(無常)과 지독한 상실감과 죄책감에 우울증까지 겹쳤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너무 힘들어 생전 처음으로 정신과에 가서 항우울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름 절박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백일기도를 예정하고,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추운 겨울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한 시간여 동안 어두운 산길을 걸어 올라 작은 암자 법당에서 백팔 배를 하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런 생활이 두 달쯤 지났을 때부터 차츰 우울증이 사라지고 어머니의 부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명상을 통하여 어머니의 임종을 형상화한 글이 이 시이다.
‘하얀 모시옷’을 입고 ‘하늘을 보고 있는 여자’는 장례식장 유리벽 너머로 바라본 염습(殮襲)을 마친 어머니의 모습이다. 해와 달과 별이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모든 생명은 서쪽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피안(彼岸), 그곳은 서쪽에 있을 것 같다. 피안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것은 생의 마지막 호흡일 것이다. 그래서 그 바람은 ‘점선(點線)의 바람’이다.
평생 일곱 남매 자식들의 가슴에서 자박자박 거닐었던 어머니의 걸음걸음, 비록 어머니의 그 ‘하얀 버선걸음’은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새벽명상을 통하여 오히려 어머니의 ‘푸른 생의 숨결’은 내 혈관에서 힘차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숨결이 ‘생명의 이음줄’이 되어 ‘강물을 타고’ 흘렀다. 그 순간 명상에 잠겨있던 내 몸에 격렬한 진동이 왔다. 그때 치유는 시작되었다.
오늘도 푸른 ‘생명의 이음줄’은 여전히 내 혈관에 흐르고, ‘노을 손’이 찾아와 어머니의 영전에 ‘경건하게 절’을 하고 어머니의 넋, 그 ‘강물을 빗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