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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Nov 18. 2022

시간을 쪼개 봅니다

주부의 시간 = 공공재?

"너무 아까워서..." 그녀의 말이 고마웠다. 

나를 아까워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뭉클한 일이다.


때문에 이른 아침, 엑셀 창을 열고 

나의 하루를, 나의 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 보았다.


오전 5시 기상.

위풍당당 타이핑했으나, 몇 초 후 5를 6으로 고쳤다.

'알람 맞추고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 6을 다시 5로.

'아니 아니. 체력이 예전만 못해. 장기 프로젝트잖아.'

5를 6으로 다시 바꿨다.


6에서 시작해 22에서 끝나는 하루.

16칸을 만들어 놓은 후 

해야 하는 '주부로서의 일'을 칸칸 채워 넣고 하늘색을 칠했다.

세상에 주부의 일은 하늘이 내린 일이라는 거야 뭐야.

22칸의 대부분이 하늘색이로구나~


시간을 다시 30분 단위로 쪼개 볼까? 고민했지만 포기.

틈새시장(? 자투리 시간을 모아 모아 보겠다는 의도였음)을 노리겠다며

약 한 달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기록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주부의 시간은 공공재임.'

틈새시장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결론.


'나는야 배짱이 주부!' 작정하고 나서면 할 일이 정말 없지만 

제.대.로. 한번 해 볼까? 나서면 끝없이 일, 일, 일이 몰려드는 것이 집안일인 듯. 

"우와~ 파김치 담았어?" "와우, 간장게장까지!"

이렇게 티 나는 일은 보람이라도 있지.


마당 낙엽 긁어 모아 버리기, 욕실 타일 물때 제거, 

그릇장 정리, 냉장고 청소,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등은

시간과 에너지 대비 티도 나지 않는 일이다. (사실 주부의 일 대부분이 이러함.)


죄 하늘색인 엑셀 시트에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며 확보한 노란색 4칸.

'하루 4시간, 가능할까? 에잇, 3시간으로 줄일까? 아냐 아냐. 3시간은 너무 적잖아.'


[평일 9시~13시까지 업무 가능. 실시간 응대 및  피드백 가능.]

비고란에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예외상황도 꼼꼼하게 기입했다.


파일을 송부하며 다음과 같은 감사인사를 더했다.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의 하루를 시간대 별로 나누고 운용 가능한 시간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견적서 송부 후, 살짝 설레고 동시에 울적한(왜 온전한 나의 시간은 하루 4시간도 빠듯한가!) 마음으로 전복죽을 끓였다. 든든하게 그릇 뚝딱! 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제안받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1회 이상 출근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도 전했다.


"늘 이야기 하지만, 나는 당신 일하는 거 적극 찬성이야.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면 좋지."


말자, 말자, 말자.

말하지 말자, 암말도 하지 말자.


하지만 내 입은 결국 열리고야 말았으니...


"당신 마음 진심인 거 알아요. 나 일하는 거 누구보다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도.

그런데, 비아냥 거리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쫌 그래.

막상 일 시작해도 여전히 집안일이란 도미노는 내게만 치우쳐 있을 거잖아.

자기가 그 도미노 조각들을 일부 가져갈 것도 아니고"


더 있다간 작은 불씨가 화산이 될 것임을 감지한 것인지

남편은 서둘러 주차장으로 나서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아놔! 하트 따위를 날릴 일이 아니라고, 이건!'

내가 원하는 건

"걱정 마 선영아. 집안일 팍팍 가져가겠어."

"청소 따위? 걱정 말어. 빨래? 정확하게 반반 나눠보자."

뭐 저런 말, 약속이었다고. 손가락 하트 따위, 나는 천 개도 날려줄 수 있다고!


거실 창으로 스며든 얄밉게 따사로운 햇살을 보며

식어버린 전복죽을 입 한가득 밀어 넣었다.

'어떻게든 할 거야. 잘 먹고 힘내서 하고 말 거야!'


+


이 계약, 성사되면 좋겠다.

그러면 제일 먼저 적금통장 만들어야지.

따박따박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던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매월 찾아오는 월급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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