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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pr 22. 2023

열 살 딸의 추천사

이력서를 아직도 안 썼다. 쓰질 않았으니 당연히 보내지도 않았다. 어느새 3개월이 지나가니 이미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채워졌을지 모른다.


아이가 사용하는 물건과 관련된 회사라 오늘 문득 그 물건을 사용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나 : 쮸~ 엄마 이 회사 취직하면 어때?


아이 : 왜? ooo은 엄마 꿈도 아니잖아.


나 : 이 회사에서도 글 쓰는 사람 필요하데. 물건에 대한 설명서도 써야 하고, 이 물건이 왜 좋은 지도 잘 써서 팔아야 하니까.


아이 : 그럼 그게 엄마 꿈이야?


나 : 그렇지.


아이 : 그럼 해, 취직.


나 : 그런데... 엄마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야, 뽑아줘야지.


아이 : 뽑아줄 거야. 


나 : 그걸 어떻게 알아?


아이 : 엄마는 성실하고 좋으니까.


나 : 잉? 엄마가 성실하고 좋아? 고마워 딸.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랑 일도 안 해 봤잖아.


아이 : 엄마, 회사는 진짜 냉정한 곳이지, 그치?


나 : (헐... 너 열 살 맞니?)


아이 : 그런데 엄마는 회사에서 엄마를 지원해 주는 사람 있잖아.


나 : (잉?) 지원??? 혹시 지지라고 말하려 했던 거야?


아이 : 아. 지지. 지현이 이모. 지현이 이모 맞지? 이모가 엄마 지지해 주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좋은 사람이야.


(지현이 이모는 나의 오랜 사수로, 내가 존경하는 예전 직장 상사이자 선배다.)


나 : 와... 완전 감동이야. 알았어. 엄마가 진짜로 지원해 볼게. 용기 내서 도전~~~


이 밤 나는 두 달 만에 이력서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엄마는 성실하고 좋으니까 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넣을 예정.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황당 스토리가 될지 모르지만, 살면서 내가 써 본 자기소개서 중 가장 빵빵한 추천사가 들어갈 것 같다.


+


6년 전(?) 어느 날의 일기. 뭉클하고 은근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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