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한다, 브로콜리 머리를

꽃편지 17

by sunny

우아하고 기품 있는

그런 인물이고 싶다가도

순간순간

나의 오랜 이상형을

배신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20대엔, 찰랑찰랑 긴 생머리.

30대엔, 단정 깔끔 단발머리.


그런데 40대가 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인생 뭐 있어?

조금 엇나간다고,

살짝 내 스타일 아니라고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일까? 싶더라고.

그래서 해버린 거야, 이 뽀글 머리.


단정하고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에

와글와글 작은 산 같은

빠글이 파마는 안티라 누가 그랬던가.


40대 기념이라며

브로콜리처럼 부푼 머리를 하고 나타난

여고시절 단짝, A여고 최고 모범생,

영지의 모습에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브로콜리 머리의 영지는

유쾌했지만 단정했고

발랄하지만 단아했고

경쾌하게 지적이었다.



브로콜리 머리를 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일단 머리 길이가 최소 어깨에서 한 뼘 이상 되어야 풍성하고 깊이감 있는 빠글빠글을 기대할 수 있다. 직장생활 중 몇 번이나 브로콜리 머리를 꿈꿨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

교육회사 홍보를 담당할 때엔 신뢰감을 위해 브로콜리 머리 대신 단발을 택했다. 퇴사 후 육아에 전념할 때엔 남편의 거래처 행사에 부부동반 초청을 받아 브로콜리를 하러 가서는 결국 세팅 파마로 기울었다. 여름엔 버티고 버티다 너무 더워서 싹둑. 겨울엔 샤워 후 머리 말리기가 번거로워서 또 싹둑.

이번엔 이번엔 하면서도 번번이 기장이 어깨를 넘을락 말락 하면 짧은 머리의 단출과 간편을 외면하지 못해 브로콜리 머리는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하게 되려나, 브로콜리 머리?

나는 꿈꾼다. 어느 골목 어느 미용실에서 강한 빠마 약 냄새를 버티며 커다란 보자기를 머리에 묶고 미용실 옆 OO천국에서 브로콜리가 완성될 때까지 김밥에 라면을 사 먹는 상상.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꽃 작품과 글을 엮는 <꽃편지>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과 함께 원고 작업을 했다. 매주 5개의 이야기, 총 60개의 이야기를 내 안에서 끌어냈다.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꽃편지> 프로젝트 덕분에 내 안에 떠돌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기록했다. 노트북이 망가져 모든 기록이 사라져 버렸던 2021년의 어느 날, 혹시나 하고 찾아간 Leposy의 블로그. '감사합니다' 아직 글들이 남아있었다. 내겐 소중한 이야기들을 한 편씩 옮겨 담는다.


[출처] https://blog.naver.com/leposy/22091968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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