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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pr 19. 2022

<비장함은 비추> 사훈을 지었어요

아직 회사 이름도 못 지었지만...

"선영아 그래서 회사 이름은 뭐야?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데?"


1년째 회사 이름을 짓는 중이다. 동시에 1년째 회사의 주력상품(?)을 고민 중이다.

그간 내 머릿속에서만 3번이나 회사이름이 바뀌었다. 무슨 일을 할지, 막연한 추상화는 가득한데 선명한 정물화로 그려 내기엔 아직 어려움이 있다.


회사 이름도 못 지었으면서, 나는 사훈(?)이랄까 그런 것을 정했다.

이름도 주력상품도 정하지 못한 선영이네 회사(가칭)의 사훈은 이것.




혹시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를 잠재 고객님께.


사훈 <비장함은 비추>는 오직 제게만 해당하는 말로, 고객과 약속한 일은 비장한 마음으로 임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긴장해야 하는 것이 "남의 돈 받는 일"이라고,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거든요.


<비장함은 비추>는 앞으로 만나게 될 스스로에 대한 실망의 순간들, 예상치 못한 실패, 준비하지 못한 돌발상황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각오입니다. 


세상 무너진 듯 막막해도 울지 않을 거예요. 

아니 울더라도, 울고 난 후 찬밥에 후루룩 물 말아서라도 밥은 꼭 먹을 거예요. 그렇게 속을 채우고 나서 눈물 쓱쓱 닦고 다시 일어설 거예요. 


죽을힘 다해 아등바등하는 대신 살짝 힘 빼고 물러서서 '니가 암만 그래 봐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비장함 대신 헐렁함을, 부러지는 대신 휘어져서라도 이어가고자 하는 제 마음을 담은 사훈입니다.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나는 나를 <에디터>로 소개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객사 제품을 애용하는 혹은 사용하는 소비자를 찾고, 고객사가 원하는 주제와 어울리는 인터뷰이를 선정한다. 고객사와 협의 후, 최종 결정된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다.


엿보기(?) 좋아하는 나는 인스타그램을 '일'로 시작했다가 '드라마'를 보듯 빠져들어 늘 예상시간의 곱절을 소비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뭐랄까, 짝사랑 하던 남자아이의 방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우와, 저 전등 뭐니? 어디서 샀을까?'

'와우. 진짜 솜씨 좋으시다. 집이 아닌 카페인 줄. 어쩜 저리 아름답게 먹을까?'

'어머머. 이 영화 나도 보려 했는데.'


"전화 인터뷰라서 왠지 소개팅하는 것처럼 긴장되더라고요."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하고 인터뷰 주제를 설명 후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한다.


내가 잘하는 건 저런 부분이다.(자랑~) 인터뷰이에 맞게 공감의 포인트를 달리하며 매번 내 소개를 변경한다. 사실을 이야기 하지만, 인터뷰이와의 교감이 가장 클 것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자기소개를 한다. 만나서 하는 인터뷰 보다, 서면 인터뷰 보다,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전화 인터뷰는 꽤 까다롭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목소리 만으로 호감이 가요." 

얼마 전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로부터 힘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랑~)


회사의 주력상품을 찾아내기 위해 나의 장점과 재능을 들여다보고 있는 요즘, 저런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된다.


"엄마는 왜 일을 해?" 아이가 물었다.

"돈을 벌고 싶어서. 그리고... 계속 잘 자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나는 내가 작심삼일의 대표주자란 사실을 잘 안다. 다행인 건 자신과의 약속은 매일 같이 어기면서 타인과의 약속, 특히 돈이 오가는 '업무적 약속'은 죽을힘을 다해서 까진 아니라도 죽을힘의 직전 까지 노력한다. 


사람 박선영은 번번이 한계를 넘지 못하지만, 

박선영 팀장은 '이번엔 어렵겠어' 싶은 지점까지도 스스로를 기어이 끌고 가더라.


총 네 분의 인터뷰이 중 두 분이 전화 인터뷰 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한 것 같다며, 카톡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내주었다.


'그래. 이런 거였지. 일상 속 성실함, 일상의 열심히는.'

그 두 개의 카톡이 오래 마음에 남아, 지난 한 주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지낼 수 있었다. 


워킹맘이라 일요일 저녁 전화 인터뷰를 한 인터뷰이는 내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이만큼 직장생활을 해 보니 일을 계속하는 것도 용기지만, 일을 그만두는 것도 용기 더라고요. 저는 에디터님이 정말 용기 있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일시가 잡히면, 해당 인터뷰이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살핀다. 보는 눈이 제법 밝은 편이라 같은 인타스그램을 봐도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캐치해 내는 재능이 있더라. (또 자랑~)


하지만 인터뷰이 입장에선 비록 인스타그램에 공개로 올린 내용들이라도, 처음 보는 심지어 목소리만으로 만난 상대가 자신에 대해 너무 상세히 알고 있으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뷰에 앞서 설명한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꼼꼼하게 살폈어요. 그래서 어쩌면 당황할지도 몰라요. 제가 당신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어서. 그러니 부디 놀라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아는 것처럼, 당신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저에 대해 알고 싶을 지 몰라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잠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렇게 전화 인터뷰를 시작한다.


나를 감동시킨 인터뷰이의 어떤 날의 포스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최근 그 혹은 그녀가 본 것이 분명한 나도 본 영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더불어 나에 대해서도 적절한 선까지 소개한다. 


네 아이를 둔 워킹맘인 인터뷰이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아이 여섯 살 때 그토록 버티고 싶었던 직장을 퇴사했던 나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30분 간의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그것 역시 용기"라는 말로 내게 진짜 용기를 선물했다.


인터뷰 원고를 작성하며 줄곧 한 가지 바램만 품었다. 내가 글로 기록한 그녀의 생각들이, 그녀의 어떤 날을 기분 좋게 하기를... 그녀의 어떤 날의 즐거움이 되기를...


회사에 있을 때엔 몰랐다. 끝났나 싶으면 밀려오는 월말 보고서, 마감, 기획회의에 치여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고서야 나는 내가 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순히 통장에 찍히는 숫자 그 이상의 의미였음을 깨달았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일을 할 것이다. 

나의 일이,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잘 자랄 수 있는 귀한 자양분임을 아니까. 나는 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시, 비장함은 비추. '일' 에 대해서는 비장하되 그 외 순간에는 '흥칫뿡.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니?!' 허허실실 헐렁함으로 대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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