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Oct 03. 2022

우리가 놓친 사람

본 적 있나요? 이보다 아름다운 작별인사

01

꽤 오래 잡지사에서 일했다.

일을 시작했던 초창기엔

매월 나오는 잡지 라도

그 안에서 만든 사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 시점부터

만드는 사람(그것도 에디터 국한이긴 하지만)이

책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에디터가 체험한~

*** 편집팀이 가 본~

가장 좋아했던 건, 2페이지 분량의 편집 후기.


예나 지금이나 

무대 뒤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02

어느 해 인가, 

럭셔리였는지 행복이가득한집 이었는지

퇴사하는 동료에 대한 '안녕'을 편집후기에 실었다.


'세상에, 잡지에 실린 롤링페이퍼라니...'


2~3줄 굿바이 인사 중

아직 까지 마음에 남아있는 문장은 이것.


"우리가 놓친 사람, OOO."

이보다 더 힘이 되고(떠나갈 사람에게)

동시에 뒤돌아보게 하는 굿바이 인사를 

나는 본 적이 없다.


03

"선배,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선배가 한다고 하면 바로 O.K. 하려고.

어때요, 선배. 생각 있어요?"


약 1분이나 되었을까.

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할지 수십 번은 생각한 듯.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끌어도 같은 결론에 아쉬움만 클 터라

바로 답했다. 


"고마워요. 그런 중요한 자리에 내 생각해 주어서.

나 너무 좋잖아, 지금.

얼마나 그 일 하고 싶을지 알죠?

그런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콘텐츠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잖아요.

당연히 하고 싶죠. 당연히 욕심나.

무엇보다도 그대라서. 그대랑 팀이 되는 일이라서.


우리 함께 할 때 얼마나 좋았어요. 합은 또 얼마나 잘 맞았게!

내가 내 책임을 다 해야, 그대가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으리란 걸 아니까

그런데 그 책임이라는 것이 나란 사람 한 명에 국한된 게 아니라

팀을 이끌어야 하는 것임을 아니까, 그래서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초기 팀 세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둘 다 알잖아요.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그때 잘 대처하고 막아줘야

그대가 그대 역할에 집중할 텐데... 지금 내 상황이...


아이가 6학년이에요. 내년에 중학교에 가요.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가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시기가 있더라고요.

나 좋은 거 하겠다고... 매번 그 시기를 놓쳤어요.


2023년 6월에도 이 제안 유효하면

그땐

기쁘게 "예스. 예스. 예스" 할게요.


아니 내가 먼저 물어볼게요.

"그때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

아침에 눈을 떴는데, 뜬금없이

"우리가 놓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월요일인데 빨간 날이라 그런 건지

빨간 날인데 비까지 내려 그런 건지


그에게 내가

'아쉽게 놓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여나 이렇게 물으신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