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있나요? 이보다 아름다운 작별인사
01
꽤 오래 잡지사에서 일했다.
일을 시작했던 초창기엔
매월 나오는 잡지 라도
그 안에서 만든 사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 시점부터
만드는 사람(그것도 에디터 국한이긴 하지만)이
책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에디터가 체험한~
*** 편집팀이 가 본~
가장 좋아했던 건, 2페이지 분량의 편집 후기.
예나 지금이나
무대 뒤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02
어느 해 인가,
럭셔리였는지 행복이가득한집 이었는지
퇴사하는 동료에 대한 '안녕'을 편집후기에 실었다.
'세상에, 잡지에 실린 롤링페이퍼라니...'
2~3줄 굿바이 인사 중
아직 까지 마음에 남아있는 문장은 이것.
"우리가 놓친 사람, OOO."
이보다 더 힘이 되고(떠나갈 사람에게)
동시에 뒤돌아보게 하는 굿바이 인사를
나는 본 적이 없다.
03
"선배,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선배가 한다고 하면 바로 O.K. 하려고.
어때요, 선배. 생각 있어요?"
약 1분이나 되었을까.
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할지 수십 번은 생각한 듯.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끌어도 같은 결론에 아쉬움만 클 터라
바로 답했다.
"고마워요. 그런 중요한 자리에 내 생각해 주어서.
나 너무 좋잖아, 지금.
얼마나 그 일 하고 싶을지 알죠?
그런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콘텐츠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잖아요.
당연히 하고 싶죠. 당연히 욕심나.
무엇보다도 그대라서. 그대랑 팀이 되는 일이라서.
우리 함께 할 때 얼마나 좋았어요. 합은 또 얼마나 잘 맞았게!
내가 내 책임을 다 해야, 그대가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으리란 걸 아니까
그런데 그 책임이라는 것이 나란 사람 한 명에 국한된 게 아니라
팀을 이끌어야 하는 것임을 아니까, 그래서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초기 팀 세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둘 다 알잖아요.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그때 잘 대처하고 막아줘야
그대가 그대 역할에 집중할 텐데... 지금 내 상황이...
아이가 6학년이에요. 내년에 중학교에 가요.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가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시기가 있더라고요.
나 좋은 거 하겠다고... 매번 그 시기를 놓쳤어요.
2023년 6월에도 이 제안 유효하면
그땐
기쁘게 "예스. 예스. 예스" 할게요.
아니 내가 먼저 물어볼게요.
"그때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
아침에 눈을 떴는데, 뜬금없이
"우리가 놓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월요일인데 빨간 날이라 그런 건지
빨간 날인데 비까지 내려 그런 건지
그에게 내가
'아쉽게 놓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