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Oct 07. 2022

어른들도 싸우면서 클까?

9월 30일, 대폭발 편

01.

9월 30일, 23시 3분경

대폭발이 일어났다. 우리 집에.

시작은 술이었다. 아니 불금의 술자리였나?

아니 아니. 

그저 나는 질투가 나고 부러웠던 거다. 


'금요일 밤의 모임이라니. 좋겠다.'

'부럽다, 누군 평일 밤에 친구도 만나고.'

'우쒸, 이제 애 좀 컸다고... 사전 논의도 아닌 통보야?! 당일 저녁 나 오늘 늦어하면 끝이냐고.'


온 힘 다해 목청 높일 생각도

가슴 깊은 곳 아프게 남은 어떤 날 어떤 일들을

줄줄줄 엮어낼 생각도 없었다.


하긴, 부부간의 폭발이 그렇지 뭐.

성냥으로 살짝 지익~

어 뜨거라, 정신 차리고 보면

나도 상대도 온몸이 불타오르고 있다.


Maison to Maison 2022에서 만난, 갑빠오 작가님의 작품


02

언제나 자신 있었다.

남편과의 싸움에선 항상 이길 거라는 승패에 대한 자신.

남편 스스로 자신의 불길을 잡고 결국은 백기를 들고 말 거란 자신. 

이렇게 폭발을 일으키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자신.


그런데 달랐다.

남편의 불길이 여느 때와는 그 강도와 의지가 남달랐다.

'아하,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최대 화력으로 응해 줄 수밖에.


03

싸움에 있어 이기지는 못해도

상대의 속을 끝없이 끓어오르게 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안다.


하나. 흥분하지 말 것.

상대가 끓어오를수록

비록 내 속은 끓다 끓다 넘칠 지경이라도

더없이 평온한 척할 것.


두울. 이성적인 척 비아냥 거릴 것.

열변을 토하는 상대를 눈을 내리깔고 지켜보다

상대의 말이 끝난 후, 약 10초간 침묵.

그 후 차분하고 여유로운 말투로 응대할 것.

(피식 혹은 흥의 제스처를 취해주면 효과는 배가 됨.)


셋. 종이나 노트북을 이용할 것.

(녹음기는 너무 비인간 적이니 자제)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은

이렇게 세 가지라는 거죠?" 

프로젝트 미팅에서 논의사항을 확정하듯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 할 것.


마지막. 반드시 존칭 사용.

높임말의 탄생은 이런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한데... t.t

대폭발에서의 나의 최대 무기는 높임말 이었다. 


"아.. 그러셨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아... 그러시군요. 그럴 수밖에 없으셨겠죠."


어쩔수 없이 이런 싸움에 출전 중이지만

나의 싸움은 당신의 그것과는 달라. 

이성적이고 우아하고 기품이 있게 싸워주겠어 라는 그런 마음이 담긴.


+


한데.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달랐다.

존칭은 개뿔.

나도 몰랐던 마음의 말들이

생각할 시간을 생략한 채 입 밖으로 폭주했다.


흥분했고, 종이와 노트북 활용은 생각도 못 했으며

이성은 집 나간 지 진즉.


외려 남편이 그간 내가 선보였던 싸움의 기술들을 골고루 사용했다.

이성적이었고

차분했으며

극존칭을 사용하더라.


to be continued

.

.

.


 9월 30일 대폭발 

10월 1일 폭발의 여운

10월 2일 세상에 이런 엔딩이?

10월 3일 제 3의 목격자

10월 4일 대폭발 그 후


부부싸움을 시리즈로 기록하는 나란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놓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