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인상 깊은 문장을 찾아 제 생각을 적습니다.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중략)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황정은, 『백의 그림자』, 158~159쪽)
자연스럽게 허망하다는 건 필연적일까, 인위적일까. 삶이 본래 허망하다는 건 삶이 워낙 유난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유난한 탓에 그저 허망할 뿐이라고. ‘자연’과 ‘허무’가 어우러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모순이 사실 당연한 일이 아니라면, 모든 게 자취를 감추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아픈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고, 삶이 힘든 사람들의 마음이 힘들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난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아픔, 힘듦, 어려움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보인다. 지나다니는 걸음걸음에서 느껴지는 그날의 기척을 그저 무시해 버린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누구든 겪는 거니까. 당연하니까.
말 속에 숨겨진 가시를 무시하고, 행하다 보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서 상처 입히고 상처받는다. 인생의 성질이라는 것이 본래 허망한 것이라면 허망이라는 단어 아래 깔린 여러 아픔을 덮을 순 있어도 허망이 되려 더 허망해진다면 밑에 잠재된 창살들이 튀어나와 발목을 휘감기 시작한다. 숱해서, 허다해서, 그래서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든다.
공허가 불가피한 건 사실일지라도 더 공허한 삶이 삶의 지표가 되어선 안 되기에, 허망한 죽음이 있는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아니기에 자연스럽지 않은 허망을 찾아간다. 그 모든 것들을 소중히 대해야 하는 까닭은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해지기 때문이다. 귀한 삶 속에서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은 기억의 자취가 오래되어 사라질지라도 흔적의 흉터는 더 오래가기 때문일 것이다.
빛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그림자처럼 삶이 있어야 허망도 허무도 나올 수 있기에 그저 허망이 그림자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길어지는 그림자, 일어서는 그림자가 나에게 손짓할 땐 끌려가다가도 곁에 있는 누군가를 생각한다. 같이 걷고 있는 이를 떠올린다. 그럼 허망한 일이 더 허망해지지도, 두려운 일이 더 두려워지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