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의 사랑
찔끔찔끔 쓰는 브런치이지만 오늘은 새해라는 타이틀로 조금은 거창하게 시작해 봅니다.
그간에는 어떤 작품을 보고 강렬할 때 무언가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때에 (그래봤자 두어 개 정도지만 )
글을 쓰곤 했지만 오늘은 조금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 해가 넘어가는 시기에서 번아웃과 목디스크로 인해 근 2-3주간은 무기력감에 휩싸여있었는데
그러던 중 지인들과 하는 영화 관련 콘텐츠를 위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와 <피부를 판 남자>를 보고
생각을 적어 내리던 날이 있었습니다.
오후의 사람이 많은 체인 카페에 앉아 글을 적어 내려 가는데,
이 두 영화에 대한 사유가 마법처럼 세상의 색채를 돌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새해를 맞이해 두 영화와 함께 자유와 사랑 이 두 가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먼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영화는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의 시선으로부터 진행된다. 허물어지기 전의 베를린 장벽과 황량한 도시 속
사람들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고 기록하는 천사들, 그들은 철저한 관람자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천사의 모습이 영화를 보는 관객과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점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건을 겪고 좌절하기도 승리하기도 하는 캐릭터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사들이 바라보는 인간들의 내면엔 다양한 불안과 슬픔, 욕망이 섞여있다.
누군가는 애인의 보챔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삶의 허무함, 잊히는 것들 이 모든 속마음을
천사들은 증거하고 목격한다.
영화에 나오는 천사들을 발터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 등장하는 역사의 천사와 유사하게 바라보는 견해도 있다.
폴 클레의 그림 [안겔루스 노부스] 는 역사의 천사로 이해됩니다. 천사는 과거를 바라보는데, 끔찍한 파국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폐허 위에 폐허가 겹겹이 쌓이고 있습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고, 죽은 자 들을 불러일으키고, 부서진 것을 다시 결합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발아래 놓인 쓰레기를 걷어차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낙원으로부터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싹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접을 수도 없습니다. 폭풍은 천사가 등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천사를 떠밀고, 천사 앞의 파편더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쌓여갑니다. 이 폭풍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바라보는 흑백의 세상, 그들은 영원히 존재하기에 모든 것은 현재 할 수 없는 듯하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과거만을 바라보는 역사의 천사와 닮아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에서 다미엘은 마리온을 마주하고 끝끝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빔 벤더스 감독의 빔 벤더스스러움 (?)을 절실히 느꼈는데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감독이라고 항상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 전반에 걸쳐져 나오는 황량한 근대의 모습과 전쟁이 남긴 잔해들 그리고 인간 내면의 공허와 슬픔들을 모두 마주한 다미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택하려는 것, 영원을 뒤로하고 지금을 살아가려 하는 것
이 부분을 생각하며 깊고 깊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공허와 슬픔, 불안 없는 삶을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항상 이러한 면들이 존재하기에 기쁨이 기쁨일 수 있고 환희가 환희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감독의 최근작인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한동안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작은 풍경들에 감사했었는데
이러한 마음은 주기적으로 상기시켜주지 않으면 금세 삶엔 불만과 불안이 넘쳐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한 해의 시작을 함께하기 좋았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Dedicated to all the former angels, but especially to Yasujiro, Francois and Andrej.
모든 전직 천사들에게 바친다. 특히 야스지로, 프랑소와, 그리고 안드레이에게.
영화 말미의 헌사가 특히 반가웠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콜롬보가 떠오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영화를 한다'라는 것의 의미는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만 하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감독뿐만이 아니라 참여하는 다양한 파트에서도 정도나 방식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물(캐릭터)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작업에 대한 애정도, 삶에 대한 기쁨도 사실 내 마음의 스위치가 꺼져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문득 또 스위치는 꺼지겠지만 켜는 법을 안다면 혹은 결국엔 다시 켜진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아니면 그걸 넘어서서 꺼져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난 괜찮다.
애정하는 여러분도 모든 것이 괜찮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