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서
'나는 음악가다'라는 소개를 하기엔 여전히 마음이 떨린다.
주로 영화나 영상, 그리고 무용에서의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을 하는 나는
온전히 모든 것을 담아 오롯한 내 음악을 만들어본 적이 없음에 아쉬움을 느끼고
내년을 목표로 개인 앨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여전히 영화나 무용, 다양한 영상 매체의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한 나는 주기적으로 성장통에 시달린다.
29살에 돌입하며 개인적인 사건과 작업의 상황들 속에서 전에 없던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겨울 감기처럼 찾아온 고민들을 지나 봄, 그리고 여름을 맞이하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보고 듣는 일이다.
오늘 관람한 gs아트센터의 라베로날 컴퍼니&마르코스 모라우의 <파시 오나 리아>와 <죽음의 무도>는
보고 듣는 것의 방점과도 같았다. 이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야만 한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는 앞으로도 더 잘 보고 듣기 위해서 이 연재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파시오나리아>의 경우 정말 부끄럽게도 공연 시간에 늦어 처음부터 작품을 관람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함으로 가득 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가서 마주한 무대는 네모난 프레임의 객석을 향하는 조명이 무대의 가장자리를 경계 짓는 형태였다.
제4의 벽 역할을 하듯, 스크린으로 느껴지는 구성의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일상적인 듯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과정이 계속될수록 어딘가 기묘한 틀어짐과 변주들이 생겨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 무용수가 조명으로 이루어진 프레임 바깥으로 넘어와 안쪽 무대공간의
혼란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제4의 벽 안의 인물이 그 공간을 빠져나옴으로써 비극이 형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벽 안의 인물이 벽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본인이 있던 곳이 실제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
그럼에도 인물의 본질은 그 실제 아님에 속하는 것은 비극일 것이다.
트루먼 쇼의 그것과 같이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극에서 너무나 깊게 각인된 음악이 두곡 있었는데 하나는
74년 발표된 Isao tomita 버전의 clair de lune, 달빛. 창 밖의 달이 점점 더 다가오며 거대해지는 순간
존재들은 한없이 무기력하고 전자음의 레이어는 거대하게도 아름다워서 인물들은 무용해지는 것만 같은 감상
그리고 또 다른 한곡은 마지막 씬에 나오는데, 이때 제4의 벽 안의 존재들에게서는
이유도 모르는 채 형식에 사로잡혀 과잉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본질을 잃은 생명에게 형식만이 과적된다면
이러한 풍경이 아닐까 싶었던 씬, 그때 음악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도 등장했던 마태수난곡,
이 장면에서 가상의 행성 파시오나리아의 존재들이 너무나 가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듯했다.
또한 본질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gs아트센터의 공간과 음향이 부족함이 없어 더욱 만족스러웠던 작품.
예술이 상기시켜야 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짚었고.
뛰어난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내 안에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