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성공적인 다원 예술에 대하여
앞서 연재한 공연 <파시 오나 리아>가 끝난 후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선
GS아트센터 로비에서 진행되는 < 죽음의 무도 : 내일은 물음이다>를 연달아 관람했다.
작품은 로비공간을 검은 가벽( 벽인지 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으로 분리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객석은 바닥부터 의자까지 활용되며 100명의 관객이 제한되어 있다.
먼저 입장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영화, 드라마 등의 현장녹음에서나 볼법한 마이크와 헤드폰, 음향기기를 맨 수도승이라니!!
마치 사신의 낫처럼 이 마이크를 들고 객을 인도해 내부 공간으로 들어선다.
이 해석과 활용이 반가웠던 이유는, 사운드 작업을 하면서 생명력에 대해 고민한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소리는, 어떠한 종류 (자의적이든 타의로든) 움직임을 동반한다.
그야말로 살아있음의 증거와도 같다고 느낀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특정 재질이나 상황에서는 소리의 질감이 사물의 구성요소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공간에 들어가면 하나의 수술대와 시체 두구가 존재한다. ( 정밀하게 제작된 인형 )
이후 수도승처럼 보이는 3명이 등장하며 시신과 같은 외형의 여자무용수까지 총 네 명이 한 시간가량의 작품을 이어나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6Sp9edEUbVo
분위기 참고가 될만한 홍보 영상 링크
세명의 남자무용수가 함께하는 안무의 스타일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분절된듯하고 기괴하게 꺾인 듯한
신체 형태와 조명의 그리고 무게감 있는 리듬을 내포한 음악의 합이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여담이지만 '닥터 후'에 등장했던 천사형태의 외계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궁금했던 지점은 초반 등장한 마이크가 극 중간에도 무용수에 의해 활용되며 마이크가 소리를 조명하기도 했는데 하울링 이슈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였는지가 정말 궁금했다.
후반부로 넘어가서 벽면의 거대한 스크린을 활용한 영상 단독의 시퀀스도 등장을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굉장히 무겁고, 클래식한 이미지로 진행되던 무용 시퀀스와 달리 정말 키치하고 일렉트로닉음악이 나오는 영상이 재생된다는 점이다. 다큐의 요소처럼 실제 자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밈이나 트럼프, 세계의 분쟁적 이미지들 이 빠른 템포로 나열된다.
흑과 백으로 진중하면서도 강렬하게 진행되던 사와 생의 경계는 영상시퀀스에서 눈이 아프도록 다색적이며 자극적인 생의 현실들을 나열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텍스트는 파시오나리아보다 확정적으로 정해진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사를 둘러싼 질감들을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해석이나 상상력이 들어가는 스페이스를 더 열어둔 느낌.
전통적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삶의 태도를 형성한다.
불교의 내세와 가톨릭의 천국과 지옥 사후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생을 살아낸다
영상 시퀀스를 보며 인간이란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내적인 것을 벗어나 다원작품으로서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원예술은 다양한 예술 장르를 융합함으로써 각 장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말 높은 확률로 각 장르가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든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혹은 하나의 장르가 강하게 작용해 마찬가지로 다른 장르들이 100프로를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작업의 프로세스 적인 면에서 계획과 시간에 따른 간극이 위 경우에 해당한다고 느낀다)
죽음의 무도는 소리와 조명, 안무와 영상이 절묘하게 맞물려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다원예술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조명이나 음악은 기존의 무용공연에서도 많이 쓰이고 영상 또한 그런 추세지만 어디까지나 서브의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모라우의 죽음의 무도는 각자가 영역에서 굉장히 감도 높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단순하게는 무용수에게 부여된 사운드 작용, 무대 공간의 비율에서 굉장히 큰 영역을 차지하는 영상과 단독 시퀀스, 조명 또한 무용수가 직접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었기에 더욱 밀도 높게 다가온 지점이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모두가 같은 나침반을 가지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연출가의 이해도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무용수 출신이 아닌, 비전공 안무가로 불리며 연극과 사진을 공부한 마르코스 모라우는 본인만의
다각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구현해 낸다.
음악을 공부한 건 오롯하게 노래뿐이었던 나는 이러한 모습을 무척 닮고 싶다.
작곡에 있어서는 독학이 90프로 이상이라는 지점은 나에게는 독창성인 동시에 불안요소이기도 하다.
요새는 장점의 성장과 동시에 단점을 극복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들에 강렬하게 휩싸여있는데,
이번 마르코스 모라우의 작품들을 보며 배움에 대한 갈증이 정말 크게 다가옴과 동시에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도 밀려왔다. 이러한 마음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