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찬란하고도 혼란스러운 청춘에 대하여
29살이 되어서 10대를 돌아보면 눈에 비친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파도들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마음속에는 열망이 끓어올랐던.
지금의 나는 그 뜨거움이 이전과 같은 온도가 아님에 슬퍼하면서 종종 나를 다시 데우는 작품들에 열광한다.
해피엔드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이 시기의 인물들 (10대와 20대 어쩌면 그 이후더라도 ) ,
뜨거움과 불안함, 미숙함과 순수한 즐거움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마주하는
감각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도 있다.
시대적 혼란과 디스토피아가 느껴지는 ' 엔드 ' 와 그 안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해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해피엔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통제와 불합리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것을 분노하기도 외면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며 성장한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스코어는 진동하는 세상의 불안감을 가진 듯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영화 속 인물들은 '테크노'에 빠져들어서 반항과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고자 한다.
최근 남이섬에서 열린 에어하우스를 다녀왔는데, 확실히 반복적이고 강렬한 사운드에 몸을 내맡기면
어딘가 해방되고 뇌가 씻겨져 나가는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눈을 감고 듣다 보면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시대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어 소리 지르는 일과 음악으로 귀를 채우고 눈을 감는 것,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분열한다.
이 과정을 보며 가장 와닿았던 것은 우정의 변화라는 키워드였다.
함께 시절을 보내던 친구들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다름을 마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 나는 그러한 다름에서 오는 비극과도 같은 감정을 몇 년 전부터 꽤나 자주 경험했던 것 같다.
그것은 많이 슬프기도 하면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조금은 씁쓸해졌던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키즈리턴'을 꼭 함께 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난 극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키즈리턴'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돌아온다, 1996년작의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2025년도에 그려진 해피엔드 속 근미래의 10대도, 1996년도에 그려진 키즈리턴의 10대도
세상에 부딪히면서 스스로의 걸음을 나아간다.
키즈리턴 또한 두 인물을 필두로 우정과 각자의 삶의 나아감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어리석기도 하고 정말로 어리석기도 하고 그럼에도 노력과 땀이 담겨있기도 한데,
해피엔드가 갈라짐이라면 이영화는 그 이후의 재회까지를 담아낸다.
그다지 행복하거나 멋지지 않은 재회일 수도 있지만 끝이 아니라는 것,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그 앞엔 어떤 종류든 다음이 존재한다는 것
'엔드'가 아닌 이야기로서의 삶이다.
이 두 영화는 닮은 듯 다르면서도 상반되지 않는다.
꼭 함께 보기를 추천하고 또 추천해 준 친구에게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사람이 첫걸음마를 할 때 어른들은 손뼉 치고 축하를 하는데,
정신적인 성장과 독립적인 존재로의 걸음은 유아기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나, 그 걸음이 넘어짐으로 이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반복해서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29살이 되어도 여전히 흔들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하니까.
'엔드' 속에서 '해피'를 겪고 넘어졌다가 일어서서 '리턴'하곤 하는 내 안의 '키즈'에게 박수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