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_설(雪)

#6. 여기는 아오모리

by 묘해

‘하아... 하아...’

걸을 때마다 푹푹 들어가는 발을 겨우겨우 끄집어내며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내딛고 있다.

‘눈... 눈이... 너무 많아!!! 젠장... 젠장... 펜션까지 차가 안 들어갈 거는 또 뭐야... 얼마나 더 걸어가야 돼... 중무장을 해서 망정이지... 도착도 하기 전에 얼어 죽을 뻔했네... 발 시려...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

설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온 세상 하얀 눈밭을 눈부시게 바라보던 흥분감도 잠시... 폭설로 펜션까지 택시가 들어가지 않아 큰 도로변에서부터 펜션까지 걸어가던 설은 눈이고 나발이고 이 아오모리에 온 것을 후회하기 직전이었다. 그 망할 놈의 비행기도 혼자 꿋꿋이 타고 왔는데 말이다.

보고 싶던 눈 때문에 세상 하얀 눈밭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한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날 태어나 이름도 ‘설’, 그녀 이름답게 눈을 너무나 좋아하는 설이지만 애석하게도 추위에는 너무나 약한 그녀였다.

‘너무 추워... 발 시려... 괜히 왔나 봐... 도겸아~~~ 연수야~~~ 나 얼어 죽을 거 같아~~~’

간밤에 내린 폭설로 조용한 시골 마을은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고 과연 살아있는 마을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순간 섬뜩해진 설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순간 온통 하얀 세상에 오롯이 남겨진 설의 발자국과 색이라고는 새파란 하늘뿐인 동화 같은 모습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 오길 잘한 것 같아... 정말이지.. 너무.. 너무너무 아름답다.’

이내 다시 한 걸음 내딛으며,

‘으... 추워... 이쁜 데 너무 추워... 히로사키 펜션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여전히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설이었다.



이윽고 저 멀리 히로사키 펜션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산의 등선 밑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인 양 식빵 같은 포근한 모습으로 지붕 위에 하얀 눈을 가득 얹은 채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는 펜션의 모습에 설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생각하던 그대로야... 사진 그대로야... 오길 잘한 거 같아... 완전 내 스타일이야.’

꽁꽁 얼어버린 발이 시린 것도 잊은 채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설은 한걸음에 달려갔다.


『히로사키』펜션의 간판을 올려다보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고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돌담길로 수놓아져 있는 아담한 정원 위에도 하얀 눈이 곱게 덮여 있었고 폭설을 말해주듯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뽀얀 눈 위에 설은 자신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정성껏 새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곱게 기모노를 입은 펜션 주인이 설을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 웃음에 설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펜션 주인을 따라 조용히 걸어 들어간 복도에는 고양이 도자기들이 설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이윽고 낮은 층고의 작은 다다미방 앞에 다다랐다.

펜션 주인은 그 모습만큼이나 곱게 다다미방의 문을 열어주었고 설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성껏 놓인 이부자리와 앙증맞은 사이즈의 테이블..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방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아주 따뜻하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폭설 때문에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네.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눈 때문에 여기를 왔는데 눈 때문에 여기 온 걸 잠시 후회할 만큼요. 하하하.”

“그래도 잘 오셨어요. 계시다 보면 아오모리의 아름다움에 오길 잘했다 생각하시게 될 거예요.”

“벌써 오길 잘했다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여기 펜션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어요.”

“아오모리는 처음 방문이신 가봐요?”

“네. 여기는 처음이에요... 그동안 일본은 몇 번 왔는데 그것도 다 일 때문에 온 거고, 여행으로 온 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러시군요.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랄게요. 일단 조금 쉬시고요. 저녁에 다시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펜션 주인은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다소곳하게 일어나 조용히 방을 나갔다.

“으... 피곤하다. 일단 좀 씻자...”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설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편백으로 이어진 나뭇결을 따라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설은 몸을 뉘었다.

“하... 좋다~~~ 좋다~~~ 진짜 여행을 오기는 왔구나~”

늘어지는 몸을 더 늘이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 흐뭇한 표정으로 설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으... 씻고 나오니 몸이 더 늘어지네.. 안 되겠다... 일단 좀 누울까?”

푹신한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가니 그대로 잠이 몰려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내가 몇 시간을 잔 거야... 오래간만에 진짜 꿀 잠잤네. 그나저나 배고프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날 때 문 밖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펜션 주인이 문을 열고 작은 상을 하나 들여왔다.

“곤히 잠드신 것 같아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렸어요. 저녁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상 위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따끈한 미소된장국과 새우튀김, 고등어 두 덩이와 장아찌 그리고 장조림과 갓 지은 밥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종일 굶고 잠만 잔 터라 급하게 밥을 먹으려는데,

“저... 한 설 작가님이시죠?”

펜션 주인이 설에게 물었다.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작가님 글 좋아해요... 그리고 인터뷰 사진도 봤었고요.”

“아... 그러시구나...”

“처음 봤을 때 긴가민가 했는데... 인터뷰 찾아보니 확실히 맞더라고요. 찾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 네... 근데... 저... 저는 조용히...”

“네... 익명성 보장해 드릴게요... 조용히 머물다 가실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니신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일 여기에 촬영이 있거든요... 아오모리에서 촬영이 있다고... 우리 펜션이 나올 수도 있고...”

“아... 그래요? 저는 몰랐어요... 뭐 내일 저는 시내로 구경 나갈 거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천천히 밥을 음미하며 먹던 설은 갑자기 연수의 떡볶이가 생각났다.

“음... 이 밥도 맛나기는 한데... 연수의 떡볶이가 그립다. 아! 맞다! 전화!”

연수와 도겸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급하게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보니 이미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반은 도겸이고 반은 연수였다.

설은 잠시 생각하다가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 대체 지금 어디세요???”

“응.. 연수야~~ 나 일본이야~”

“그러니까 일본 어디냐고요? 누가 일본인지 몰라서 묻는 거예요?”

“얘가 왜 이렇게 화를 내... 너 먼 일 있냐?”

“일본 어디냐고요!!! 지금 몇 시인 줄이나 아세요?”

“아오모리야. 오자마자 피곤해서 잠들었다고... 걱정한 거야?”

“그럼 걱정이 안 되겠어요? 비행기도 혼자 못 타는 사람이 하루 종일 연락도 안되고 일본은 폭설이라는데... 대체 일본 어디로 간 건지 말도 안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미안, 미안. 너무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들어서 그래. 일본에 잘 도착했고. 잘 잤고, 지금은 저녁도 먹었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표님이 바꿔달래요.”

“응? 응.. 도겸아~~~”

“야!!! 한 설!!! 너 진짜 나 죽는 꼴 보고 싶냐!!!”

“미안, 미안... 이미 연수한테 다 말했다고... 이제는 잔소리도 세트로 하냐... 일 절만 해라 일 절만...”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넌 정말 어떻게 된 아이가... 하루라도 걱정을 안 시키냐... 뭐...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고... 근데 아오모리라고?”

“응... 아오모리... 넘 조으당.”

“왜 하필 아오모리야?”

“왜 하필이라니... 눈 보고 싶어서... 또 조용한 곳 찾느라... 딱인 곳이 여기인데... 왜 여기 오면 안 돼?”

“아... 아니 그런 거는 아니고... 눈이 너무 많이 오니까 걱정되어서 그러지. 얼마나 있을 거야?”

“모르겠어. 일단 있어 보고 계획은 보름인데 더 일찍 갈 수도 있고, 더 오래 머물 수도 있고... 천천히 생각해 볼래.”

“그래, 알았다. 뭐 지금 급한 일도 없으니까 간 김에 푹 쉬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심심하면 나랑 연수가 갈 수도 있고...”

‘뚜뚜뚜...’


“여보세요? 설? 한 설? 야!!! 어휴.. 갈 수도 있다니 전화 끊어버리네... 매정한 것...”

끊어진 전화를 보며 도겸은 투덜거리는데, 그런 도겸을 연수는 쳐다보았다.

“대표님. 작가님은 알고 가신 거예요?”

“아니. 몰라... 아오모리 갈지는 몰랐으니까, 나도 굳이 말을 안 했어.”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지만 설마... 만나지는 않겠죠?”

“설마...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설이 전화받지 마라. 연수야... 우리 진짜 죽을 수도 있어.“

“네... 저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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