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필실은 타닥타닥 소리와 떡볶이 향기를 남기며
‘타닥타닥 탁탁’
집필실은 여전히 키보드 소리만 들리고 있었고, 한 설 옆에는 언제나처럼 연수가 있었다.
설의 눈썹 끝이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연수는 설을 힐끔 쳐다보았다.
설의 미간이 좁아지기 시작할 무렵 연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잔에 얼음을 담고 커피를 내려 설 앞에 놓아두었다.
한 설은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여전히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깨똑 깨똑’
연수는 핸드폰을 보았다. 김도겸 대표다.
‘이제 다 끝나갈 때 되지 않았냐?’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어요. 아마 오늘 탈고하실 것 같아요.’
‘탈고하면 기분이 좋을 테니까 오늘은 내가 나타나도 될까?’
‘아니요... 오늘 기분 망칠 일 있을까요? 좀 더 기다렸다가 작가님 한숨 푹 자고 나면 오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겠지? 아직은 아니지? 나 설이 보고 싶은 데... 못 본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데...’
‘에휴... 조금만 더 참으세요.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에요, 대표님.’
‘알았어.. 그럼 기회 보고 꼭 나한테 톡 줘~’
‘네네.. 그럴게요.’
연수는 도겸과의 톡을 마치고 설의 표정을 살폈다.
그 순간 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키보드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어 급히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분 후면 탈고할 것이다... 직감을 하고 설이가 가장 좋아하는 연수 표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 아~~~~ 악!!!”
설이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순간이 왔다.
드디어 끝이다.
설은 쓰고 있던 뱅뱅이 안경을 책상 위에 던지며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그녀 눈앞으로 예쁜 접시에 담긴 떡볶이가 놓였다.
“연수야~~~ 나 다 했다~~~ 연수야~~~ 떡볶이~~~ 연수 표 떡볶이~~ 사랑해~~”
연수는 흐뭇하게 설을 바라보며 설의 손에 포크를 쥐어 주었고 설은 행복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연수 표 떡볶이를 음미했다.
“자주 좀... 어? 해주면 얼마나 좋으냐.. 어? 내가 네가 해주는 떡볶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 왜 사 먹으면 이 맛이 안 나는지 몰라... 그러니까 연수야... 연...”
순간 떡볶이 접시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연수는 설의 투정을 들은 채 만 채 접시를 뺏어 들고 싱크대를 향하고 있었다.
울 것 같은 표정의 설은 연수에게 사정했다.
“안 그럴게... 미안해.. 그 접시 다시 나 주라.. 연수님? 선생님? 제발~~~”
“작가님은 참 쉬워요... 알죠? 뭐 포커페이스 이런 거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얼굴이 그냥 유리병이야 유리병... 얼마나 투명한지...
근데 왜 사람들이 작가님한테 포커페이스라고 하는지 진짜 이해를 못 하겠다니까...”
연수는 설 앞에 다시 접시를 놓으며 말했고 연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설의 관심은 오로지 떡볶이뿐이었다.
아주 잘 먹는 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연수였다.
“그나저나.. 이제 탈고하셨으니... 대표님께 말씀드려야겠죠? 한참 기다리실 텐데...”
입안 가득 떡볶이를 밀어 넣으며 설이 말했다.
“ 그 새끼한테 말하지 마. 이 기쁜 소식을 왜 하루빨리 그 새끼한테 말해줘? 절대 하지 마. 내일이나 모레나.. 아니지 일주일은 더 기다리게 하라고!!!”
입 밖으로 떡볶이가 튀어나올 듯 하자,
“네네.. 그럴게요... 그 입이나 좀 다무세요.. 아주 더러워 죽겠어 그냥.”
“연수야 너는 대체 못 하는 게 뭐냐..
우리 이참에 가게 하나 열까? 이제 글쓰기 그만하고 떡볶이 팔아서 우리 둘이 오순도순 살까?”
“싫어요...”
“매정한 년. 너는 일 초도 생각 따위를 안 하는구나. 아주 시늉도 안 하는구나.”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음 작품 구상하실 게 뻔한데 제가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기에 답을 해요, 배 꺼지게..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작가님.”
“뭐?”
떡볶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우걱우걱 한 번에 세 개씩 입속으로 집어넣으며 설이 말했다.
“작가님이랑 김도겸 대표님은 어떤 인연이에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
“그냥... 보면 작가와 대표 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갑과 을.. 아니 거의 뭐... 갑과 정 사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보여서요... 대학 동기였다는 거는 알고 있는데 동기 사이라 하기에도 너무 수직적인 관계로 보여서요... 왜 수평이 아닐까 궁금해서요.”
설은 떡볶이 한 그릇을 다 비운 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왜 그러냐면은 말이지.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 그래. 서로를 보는 마음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요?”
“응. 마음의 크기... 뭐 사람됨의 크기 말고... 서로에 대한 마음의 크기와 마음의 색깔이랄까... 크기와 색이 달라서 그래.”
“처음에 만난 얘기 좀 해주세요.”
설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뜨며 말을 했다.
“그때가... 대학 축제 기간이었는데... 철학 수업 들으러 강의실에 가는 길에 도겸이를 처음 만났어.
예전에 내가 만든 하얀 면 손수건을 치마에서 핸드폰을 꺼내다가 흘린 모양이야. 그걸 도겸이가 주워서 줬어. 그게 첫 만남이었어.”
“뭔가 드라마틱한 전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소소하네요? 그 손수건 주워줘서 처음 인사한 거예요?”
“응. 그렇긴 한데... 손수건 안 받았어.”
“왜요?”
“손수건을 주워주는 도겸이를 처음 봤는데... 와... 너도 알지? 도겸이 쓸데없이 잘 생긴 거... 머 이렇게 쓸데없이 잘 생긴 남자가 있나.. 넋이 나가니까 내가 얼어버리더라고... 그러면서 얼굴이 막 붉어지는 게 느껴지니까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그래서요?”
“그래서... 버린 거라고 했어.”
“버린 거 라구요? 금방 떨어뜨려 놓고?”
“응. 금방 떨어뜨려 놓고 버린 거라고 했어. 하하하.”
“그게 웃겨요? 미친년 같은데?”
“너도 알잖냐... 나 사람 경계 심한 거...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남자가 갑자기 훅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버린 거라고 말하고 그냥 가버렸어. 하하하... 그런데 철학 수업을 듣더라고... 그때부터 얼마나 따라다니던지...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경계심이고 나발이고 다 없어졌지 뭐...”
“그럼 그 손수건은요? 어디 갔어요?”
“몰라... 버린 거라고 해서 버렸겠지 뭐... 어디 갔는지는 몰라...”
“그게 첫 만남이었구나. 근데 왜 수직관계예요?”
“야... 딱 보면 모르냐.. 도겸이 나 좋아하는 거?”
“에??? 뭐죠? 그 근자감은?”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이요.. 고백이라도 받았어요?”
“참나... 너는 그걸 꼭 말로 들어야 아냐? 척하면 척이지... 도겸이가 날 쳐다보는 눈빛 하며... 그 인물에 여친 안 만드는 거 하며... 십 년을 내 주위만 맴도는 거 하며... 딱 그림 나오지 않냐?”
“그럼 왜 안 사귀어요? 작가님은 대표님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음... 친구... 가족... 가족 같은 친구... 친구 같은 가족?”
“아니 왜요? 솔직히 대표님만큼 작가님 잘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성질머리 다 받아주는 사람도 대표님 뿐인데...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했고.”
“잘 생겼지... 심하게 잘 생겼지... 큰 눈망울에 오뚝한 콧날 하며.. 그 기럭지하며... 긍데... 안 땡겨.”
“안 땡겨요? 뭐가 안 땡겨요?”
“남자로 안 느껴져... 그냥 옆에 없으면 안 되는 가족 같아.”
“그런 상남자가 남자로 안 느껴지다니... 작가님 혹시... 여자 좋아하세요? 설마... 저 좋아하세요?”
“가끔은 네가 여자 김도겸 같아... 둘이 수준이 아주 비슷해... 생각하는 게 고작 그거냐... 니들 둘은 나한테 가족이야...”
“하긴 그 성질머리 가족 아니면 웬만해선 받아주기 힘들긴 하죠.”
“연수야...”
“네?”
“너 지금 금 밟았다...”
“무슨 금요?”
“선 지키라고... 매정한 년아...”
당황하는 연수를 보며 꺼이꺼이 웃는 설이었다.
일주일 후
“어디를 간다고???”
“어디를 간다고는 안 했어... 왜 가는지를 말했지...”
“작품 구상하러 간다고?”
“그렇다니까... 다음 작품 언제 들어갈 거냐고 며칠만 더 지났어도 나를 들들 볶을 거였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작품 구상하러 간다는데 왜 그렇게 놀래냐?”
“작품 구상하는 거는 좋은데... 구상하러 어디 여행 가는 것도 좋은데... 왜 해외로 가냐는 거지 나는... 비행기도 못 타는 애가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간다니까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잖아.”
“한 번 이겨내 보려고... 비행기...”
“비행기를 어떻게 이겨... 머 맞짱이라도 뜰 거야? 땅에서 발 떨어지면 죽는 줄 아는 애가... 비행기도 못 타고, 배도 못 타고, 놀이기구도 못 타는 애가.”
“그래서 이번에 한번 해 본다잖아.”
“비행기가 땅으로 떨어질 것 같고, 먼가 날아와서 폭발할 것 같고, 다른 비행기랑 충돌사고 일어날 것 같고, 또 뭐라고 했냐? 버뮤다 삼각지? 거기 들어가서 영영 못 나올 것만 같다며... 이제는 안 그런 가봐?”
“.... ”
“나랑 같이 가자. 너 혼자 비행기 안 돼... 정신줄 놓을 거잖아... 안 돼 안 돼... 내가 시간 내 볼 테니까 나랑 같이 가.”
“같이 안 가.”
“왜!!! “
“혼자 갈 거야... 조용히 혼자 지낼 거야... 작품 구상할 때는 항상 혼자 여행 갔잖아.”
“그건 국내였잖아... 해외를 간다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잖아.”
“싫어.”
“왜 싫어!!!”
“야!”
“왜!!!”
“내가 왜 니 허락을 받아야 되냐!! 웃겨 아주 그냥...”
“걱정된다고!!!”
“걱정 말라고!!!”
“하... 알았어... 그럼 어딜 갈 건데...”
“음... 일본.”
“일본? 그래도 뭐 가깝긴 하네... 일본 어디?”
“그건 몰라.”
“몰라?”
“응, 몰라.”
“그런데 간다고?”
“응. 가.”
“언제?”
“내일.”
“내일??? 그런데 오늘 말해?”
“네가 화낼 게 뻔하니까...”
“화낼 걸 알았어?”
“그만해라, 김도겸... 나 화날라고 한다.”
“하... 알았어... 니 고집을 누가 꺾냐... 몇 시 비행기냐... 아니다.. 말 안 해 줄 거지... 어차피...
도착하거든 전화 줘.”
“알았어.. 잘 다녀올게... 그동안 집필실 좀 치우고... 연수 글 쓰는 거나 좀 봐주고...”
도겸이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한 후 설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행기 공포증이 심해 도겸이나 연수 없이는 한번도 해외로 나가본 적이 없는 설이지만 이번에는 혼자 비행기 타기를 꼭 해보리라 굳게 마음을 먹고 일본행 티켓을 끊었다.
설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세상이 변한 곳에 가고 싶었다.
조용한 시골의 새하얀 마을... 그곳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리라 마음을 먹고 장소는 일본 아오모리로 가겠다 결심을 했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내일 혼자 일본 아오모리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고 미리 예약해 둔 히로사키 펜션으로 가 적어도 보름은 그 하얀 눈 속에서 지내며 다음 작품을 구상할 계획이었다.
항상 도겸과 연수에게 모든 걸 의지했던 터라 35살의 나이임에도 이제야 홀로서기를 하는 듯한 기분에 몹시흥분되고 설레며 겁이 났다.
겁을 먹을 거면 제대로 먹고 싶어 아오모리로 간다는 사실은 연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일 밤은 아오모리에서 하얀 눈 덮인 세상을 보며 잠을 이룰 것이다.
설은 생각만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짐을 쌌다.
그녀에게 일어날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기쁜 마음으로 짐을 쌌다.
사진출처 : www.pixabay.com